당신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은 어떤 실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까. 작은 해안가에서 시작된 저와 제 인생의 여정은 그 절반도 채 완주하지 못하고 마지막을 고했습니다. 하지만 완주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기준에 지나지 않기에 저에게 큰 의미를 남기지 않습니다. 저는 온전했고, 충실에 실패했고 또 완벽하게 감정들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기록했던 일들과 무던히도 찍었던 사진들, 그리고 저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그 감정을 공유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이 또 다른 지평으로 나가는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것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고향을 뒤로 새로운 무대에서 저를 내보이는 것은 생선가게에 초점 잃은 생선이 되는 것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배우라는 이름을 직업으로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때 에너지는 빠르게 소멸되었습니다. 오히려 불안과 공황이 되어 내면의 비린내와 저를 싸우게 했습니다. 하지만 매트로 폴리탄의 매연과 편견이 가득했던 공기들은 저를 좌절하게 함과 동시에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절실하게 얻은 찰나의 기회에서 다행히 모든 것을 망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주위에 관심과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운이라는 것이 제대로 베풀어진다는 사실에 안도감보다 적막과 창피함이 남았습니다. 부끄러운 첫 기회의 기억을 실력으로 꾸미고자 노력했고, 연마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무대는 저를 집중하게 했고 본질을 찾게 했습니다. 성공의 순간은 그림자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식간에 따라붙었고 어떤 방향에서 그 그림자가 가장 선명하게 드리우는지 계산하게 했습니다. 무대에서 영웅이 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그때마다 계산은 간단했고 명료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 거울을 보고 짧은 음성으로 내지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계산이 아닌 선택을 하는 것, 제 이름을 나지막이 읊는 것, 그것이 제가 한 전붑니다.
나는 히스 레저입니다. 나는 히스 레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십 대 소년의 옷을 입는 대신 자아의 태생조차 혼동하는 광기의 악마가 되었습니다. 세기에 연인 앞에 놓인 근사한 남자가 되는 대신 카우보이가 되어 그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렸습니다. 빛나는 대신 굳건해지고 싶었고, 주목받는 대신 이름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악마는 내게 분노를 이겨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었고, 카우보이는 제게 세상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 다가온 수많은 외연의 기회와 보장된 자리들이 제가 선택하지 않은 그 옷과 분위기일지 모릅니다. 제 이야기와 당신을 향한 표현이 결코 당신도 특별한 선택을 하라는 강요가 아님을 알고 있겠지요.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기억될 것입니다. 다만 굳건히, 그리고 소중히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내면의 비린내가 당신의 동력이 되기를, 좌절은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운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그것이 당신과 이루고 싶은 감정의 전부입니다.
저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당신의 시간은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어떤 결과로 채워질지 신은 알려주지 않지만 누구를 위한 선택으로 다가갈지는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온전했고, 충실히 실패했고 또 완벽하게 감정들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청춘으로 삶을 채웠습니다. 나는 히스 레저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은 어떤 실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까. 제가 남긴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당신과 질문하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히스 레저가 당신에게, 히스 레저가 청춘에게, 히스 레저가 세상에 모든 히스 레저에게.
놀란감독이 조커에 대한 생각을 제게 풀어놓을수록, 이토록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쉽게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놀란에게 고려하고 있는 배우가 있는지 물었고, 그는 히스 레저라는 어떤 젊은 배우를 제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히스 레저는 조커 역을 맡게 되었고, 그는 놀란이 구상하던 조커 캐릭터, 그 이상으로 조커라는 캐릭터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역할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에게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은 모든 장면들은 매우 강렬했고 저희를 압도했죠.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꿰뚫어 보는 것 같았어요. 그의 강렬한 퍼포먼스에 힘입어 영화와 제 음악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당시 저는 패닉에 빠진 채, 그의 캐릭터를 망나니 같이 보이게 하고 냉혹하게 만드는 모든 불쾌하게 들리는 요소들을 빼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죠. 레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그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캐릭터와 레저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녹슨 면도칼 소리 같은 불쾌한 요소들까지도 그대로 살려서, 캐릭터의 복잡하고 무자비한 성격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방법 밖엔 없다고….
<한스 짐머 내한공연 추모글 중>
그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은 온전히 히스 레저였다. 그가 수많은 고통과 비린내 안에서 얻어낸 결과는 결국 그의 이름이었다. 세상의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삶은 청춘으로 채울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나는 히스 레저를 오해했고 내 선택을 의심했으며, 빛나고 싶어 했고 주목받고 싶어 했다. 비린내를 혐오했고 좌절을 망설였다. 그런 나에게 그가 그 속에서 동력을 찾으라고, 본질에 다가가라고 말한다. 강요가 아님에도 나는 다짐했다. 내 이름을 잃지 않기를. 고향에 돌아갈 때 성공이던, 실패던 내 것을 온전히 가져가겠다고.
그의 작품을 모두 본다고 해서, 이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해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히스 레저라는 사람이 잠시 머물다간 그의 기억과 흔적 속에서 흔쾌히 헤엄치고,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될 것이고 히스 레저는 우리에게 히스 레저로 기억될 것이다. 그가 전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