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 빅터가 인공적으로 생물을 배양하기 위한 실험의 돌연변이 괴물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인 신수원 감독의<유리 정원>은 생명과학으로 인간을 나무와 같은 생명체로 만들고자 하고 스스로를 나무라 불렀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빅터가 만들었던 괴물과 재연(문근영)이 만들고자 했던 나무인간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또 그들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생명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과학 박사학위를 위해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는 재연(문근영)은 한쪽 다리의 성장이 12살에 멈춰있다. 그녀는 식물 속 엽록체를 추출하여 혈액에 결합하는 녹혈구를 개발하고 인간에게 주입하기 위해 생체실험 단계에서 정교수(서태화), 수희(박지수)와 갈등을 빚는다. 미래 전망이 불확실한 재연의 연구보다 현재 실용 가능한 수희의 연구에 힘을 실어 연구실을 살리고자 했던 정교수는 재연과의 비밀연애관계를 저버린다. 남자와 동료에게 상처를 받은 재연은 결국 연구실을 떠나고 도심을 떠나 오래전부터 아버지와 함께했던 산속 유리 정원에 둥지를 튼다. 반면 후속작에 대한 스트레스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어하던 작가 김지훈(김태훈)은 문인들과 함께 한자리에서 다른 작가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부당한다. 건강상의 어려움까지 덮친 지훈은 창문 건너 이사 가는 재연을 보고 재연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우연히 재연의 쓴 글의 흔적을 발견한 지훈은 재연을 찾아가게 되고 유리 정원에서 홀로 연구를 계속하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부터 지훈은 재연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듯이 심오하고 신비로운 초록색의 향연이 가득한 작품이다. 흔히 쓰이는 구어체는 지훈과 편집장(임정운) 과의 대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고 재연의 대사는 항상 둥둥 떠있었으며 공격적이고 자기방어적이다. 이런 대사들이 작품을 더 신비롭게 만들어나간다. 영화 속에는 대비되는 것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적혈구와 녹혈구, 도시와 숲 속 유리 정원, 실제와 상상, 순수와 오염, 나무와 인간. 적혈구는 재연에게 제거해야 하는 인간의 습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인간을 채우고 있는 그 빨간 액체를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녹혈구로 채워 넣고자 했고 심지어 자신이 한때 사랑했으나 배신당했던 남자에게 그 실험을 실행하다. 재연이 적혈구를 오염이라고 지칭한 적은 없으나 분명 그녀는 적혈구보다 산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연과도 같은 녹혈구를 순수하다고 느끼고 이를 인간에 몸에 채워 넣어 순수한 생명체를 만들고자 한다.
공사장 소리가 가득하고 부당한 일이 빈번한 도시와 구분되는 숲 속과 유리 정원은 상식 밖의 구역이다. 도시 속에 재연은 연구자였으며 한때는 사랑받는 여인이었으나 숲 속에 재연은 광기 어린 과학자였고 그 안에 살지만 외지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숲에서,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여기면서 숲을 집으로 여겼지만 그 속에서 점점 그녀는 인간을 나무로 만들고자 한 연구에 집착했고 실패했다. 부상을 당한 새에게 주입했을 때에는 성공했지만 인간에게 주입했을 때 실패한 이유는 인간은 자연이면서 동시에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태초의 자연과 같은 상태였으나 점점 이기적인 마음과 서로를 시기하는 마음이 자라나 인간다움을 상실했기에 인간이지만 인간이라고 할 수없다. 흔히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선행을 베풀거나 실수를 했을 때 '인간적이다'라는 말을 한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사람다운 성질이 있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 사람다운 성질이 있다고 칭찬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있지 않고 그 성질을 숨겨놓고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에 사람이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다른 대비 실제와 상상은 소설가 지훈에게서 잘 나타난다. 소설가 지훈은 실제를 바탕으로 글을 쓰긴 했지만 일부분은 그의 마음에 따른 상상이었다. 지훈은 재연의 사진을 보고 상상했고 그녀의 일기를 보고 상상했다. 심지어 그 일기의 내용도 재연의 상상일 수도 있다. 실제와 상상을 오가며 글을 쓴 지훈은 이후 그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실화가 아닌 상상이라고 말한다. 재연의 경찰 조사를 막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지훈마저도 그녀의 실험과 그녀의 말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마지막에 상상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울창한 숲 속의 나무를 직면했을 때 비로소 실제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두 번 나오는 대사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다'라는 말은 정교수에 의해, 다시 재연에 의해 내뱉어진다. 정교수는 상류가 막혀버려 고인물을 보고 이 말을 재연에게 전한다. 재연은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훔쳐 간 수희에게 화이트 와인에 레드와인을 섞어부으면 이 말을 수희가 아닌 정교수에게 전한다. 이 둘이 생각했던 순수는 무엇일까. 재연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믿고 자신이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사실 이 믿음부터가 그녀를 오염시킨 건 아닐까. 그녀를 오염시킨 건 사랑을 저버린 정교수도, 배신한 동료도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잘못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큰 대조는 인간과 나무다. 재연은 스스로를 나무라고 말하고 인간을 나무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인간보다 서로를 위해 가지를 비켜 키우는 나무를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때는 그녀가 인간과 나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정교수가 자신의 보폭에 맞춰 걸어주었을 때, 나무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미소 지으며 들어주었을 때 그에게서 나무의 성질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에게서 다른 면을 봤을 때 재연은 그것을 올바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에게서 빨간 적혈구를 없애고 순수하다고 믿는 녹혈구를 주입해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막막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조차 난감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확신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때야 하는지. 위에 말한 <프랑켄슈타인>의 빅터가 만든 괴물이나 재연이 만들고자 한 인간 나무는 인간이 아니다. 재연은 인간 나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만들고 싶었했을지언정 그건 나무도 아니다. 우리에게 무언가 생명을 불어넣어 창조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인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일 뿐, 이 이외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사람의 모양을 하고 인간의 감정을 가졌어도 인간일 수 없다. 그것들이 자연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유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