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이제 그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by 영화요원

츠키카와 쇼 감독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충격적인 영화 제목과 다른게 분홍색 벚꽃으로 가득하고 특유의 일본 감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이미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영화화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이라고 한다.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영화는 그동안 여러 일본 청춘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님 그 이야기를 넘어 전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우리가 지금 이 작품을 2017년에 봐야 하는 이유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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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 시가(키타무라 타쿠미)는 학교 도서관을 폐쇄하게 되어 책들을 정리하게 된다. 도서 위원들과 책들을 정리하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 시가는 한 학생에게 옛이야기를 서술해나간다. 학창시절 소심한 학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같은 반 인기 소녀인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녀는 췌장에 병으로 인해 1년 안에 사망할 위험에 있었지만 주변에 친한 친구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생긴 사쿠라는 시가를 따라다니면서 죽기 전에 해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나간다.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해하게 된 찰나 사쿠라의 입원이 길어지면서 서로는 죽음이 멀지 않음을 예감한다. 시가는 사쿠라와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6월까지도 벚꽃이 피는 지역으로 떠나자고 제안했지만 사쿠라는 시가에게 가는 길에서 묻지마 폭행 살인을 당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를 마음에 묻고 살았던 시가가 그녀가 도서관에 남겨놓은 쪽지들을 이제서야 발견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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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물의 정석과도 같은 코스를 고스란히 밟으면서 인간의 죽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번 작품은 예상컨대 상반된 반응을 보게 될 것 같다. 하나는 가슴 아프고 슬픈 청춘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것을 놓친 청춘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견해는 후자 쪽이다. 실망스러운 부분들을 나열하자면 사쿠라의 상황과 다른 그녀의 행동,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진부한 인물 설정이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사쿠라는 떠나가는 자신보다 남아있을 사람들이 슬퍼할 걸 알기에,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그녀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것이고, 유일하게 나의 비밀을 아는 친구와 색다른 추억도 만들고 싶었을 거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 시가는 어떠한 사람이었나. 사쿠라 때문에 항상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평범한 학생에서 학교 인기녀와 사귄다는 루머 중심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쿠라의 태도는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그를 괴롭히는 것을 즐겼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유대감을 형성해나간다. 떠보는 듯한 성적인 농담들도 서슴지 않으면서 자꾸만 무언갈 어지럽혔다. 그녀가 가진 시한부라는 것이 무기가 되기엔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무기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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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반부에 예쁜 학생들의 청춘이야기를 하고 후반부에는 사쿠라의 죽음과 현재 시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가지 이 영화에서 놀란 점은 사쿠라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시가가 알고 있는 췌장의 병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묻지마 폭행 살인을 당해 조금 더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앞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움직이는 하루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야 말고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사쿠라의 죽음을 직면한 시가는 어쩌면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학교 선생이 되었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신도 열정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가가 시간이 지난 사쿠라의 편지를 발견하면서 그의 삶이 더 좋은 방향을 달라질 것이라는 마법에 휩싸인 것은 아니다. 그는 사쿠라의 편지를 발견하고 용기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편지는 그녀가 죽음기 직전까지 살았던 삶에 대한 확신이었고, 추억이었고, 남은 사람들을 위한 미래였다. 이런 후반부의 내용이 짧기도 하고, 동시에 사쿠라의 절친 결혼식 이야기까지 겹치면서 중요한 메시지가 흐려졌다고 생각한다. 전반부에서 너무 가벼운 이야기들로 통통 튀게 만들어서 후반부에 진중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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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자면 일본 청춘물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작품이다. 흔히 여학생, 남학생 중 한 명은 인기가 많고 나머지는 존재감이 없다. 둘 중 하나는 아프거나, 죽을 예정이거나, 숨기는 비밀이 있다. 상대는 유일하게 그 아픔을 아는 인물이다. 이런 영화들의 마무리는 언제나 감출 수 없는 눈물이거나 그동안의 오해가 풀리면서 비로소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단념하게 만든다. 언제나 벚꽃이 가득하고 부서지게 아름다운 청춘들이 가슴 시린 사랑을 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그 속내는 진부했다.

한국 영화가 고질적인 문제들을 가진 것처럼 이 또한 일본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로 보인다. <도둑들>이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에는 파격적인 소재와 에이급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이후 이 같은 형태를 모방하는 듯한 영화가 수없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제2의 도둑들을 꿈꾸며 흥행을 노렸지만 이미 그 맛을 알아버린 대중들은 영화관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왔을 것이다. 일본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앞서 말한 청춘물이었다.(사실 그런 영화만 본 걸수도 있다) 이미 이런 영화를 수도 없이 많이 본 우리들이 지금 2017년에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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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는 종종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어떤 유대감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게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을 만들어놓고 그걸 잡지 못하는 관계나 잡고도 알지 못하는 관계들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전에 흥행했던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도 연결의 끈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그런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인간이 모든 순간 만나는 상대방을 분명한 어떤 이유가 있는 인물로 그린다.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연출을 통해, 서로 놓쳐버린 끊을 다시 이으려 노력하면서 운명론을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 각자의 견해도 다르고 연출한 감독, 원작자의 견해도 다르리라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무언가를 끌고 갈 때에 뒷받침되어야 하는 탄탄한 스토리와 이 작품을 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장치, 합리적인 이유를 잘 버무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만든다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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