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어메이징 메리>의 감독 마크 웹이 이번엔 가을 감성을 가지고 돌아왔다. <리빙보이 인 뉴욕>의 원제는 팝스타 Simon and Garfunkel의 노래 제목인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에서 따온것이다. 수입하는 과정에서 짧게 제목을 줄였는데 원제목이 영화랑도 더 잘 맞고 무엇보다 노래 제목인 걸 감안하면 줄이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썸머가 떠났다는 문구를 삽입했는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지만 그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가족들과 떨어져 뉴욕에 사는 남자 토마스(칼럼 터너)는 미미(키어시 클레몬스)에게 빠져 그녀에게 만남을 제안하지만 미미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친구로 지내자고 거절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이웃 제랄드(제프 브리지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게된다. 어느 날 미미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한 가게에서 아버지와 그의 불륜을 목격한 토마스는 마음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불륜을 막기 위해 내연녀인 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를 미행한다. 그녀의 뒤를 쫓고 대화를 나누다 토마스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조한나와 잠자리를 갖게 된다. 제랄드에게 자신의 상황을 모조리 털어놓은 토마스는 조한나의 이야기와 자신이 작가가 되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며 예전에 써놓은 원고를 보여주면서 작가의 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한편 사랑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린 조한나는 토마스의 아빠 이단(피어스 브로스넌)에게 청혼을 받고 토마스와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난 토마스는 이단의 회사를 찾아가 조한나와의 관계를 실토하게 되고 거기서 그는 자신에게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토마스는 이웃집 남자 그 이상인 제랄드와 엄마 주디스(신시아 닉슨)의 관계를 비롯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고 뉴욕에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500일의 썸머>와 같은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큰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건 마크 웹 감독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에서 일반적인 사랑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이다. 불륜과 또 다른 불륜, 부적절한 관계, 심지어 탄생의 비밀까지 얽혀있는 이 작품은 누가 보면 쿨한 사람들의 막장 스토리일 수도 있겠다. 부분적으로 동의하나 그럼에도 사랑에 대해, 뉴욕이라는 세계와 개인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세계에게 사는 사람들이다. 출판사로 큰 성공을 거둔 아버지 밑에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토마스는 뉴욕이라는 동네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아버지 이단은 바람을 피우고, 조한나는 또 토마스와 바람을 피운다. 미미는 남자친구와 토마스 사이에서 밀당을 하고, 주디스는 조울증을 겪으며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스터리 한 인물 제럴드는 토마스를 아는 것처럼 그의 속을 훤히 꿰뚫어본다.
미미의 세상에서 이단의 불륜은 그들의 문제이지 아들 토마스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사람을 친소관계보다 자신의 개인감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 것 같다. 따라서 그녀는 억지로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토마스에게 가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고 재미없는 피로연에서 빨리 나가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는 사랑 때문에 변화되는 인물이다. 토마스가 미미의 세계를 깨버리는 사랑이다. 토마스가 미미에게 조한나와의 관계를 말했을 때 미미는 자신이 믿은 사람의 실체를 보고 실망한다.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저들과 달라'라고 외쳤지만 사실상 토마스로 인해 남자친구와 헤어진 미미도, 바람을 피운 이단과 같은 부류의 사람인 것이다.
불륜녀 조한나는 매력적인 얼굴과 말솜씨를 가진 인물이다. 미행하던 토마스와 마주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토마스에게 도리어 질문을 한다. 마치 토마스를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이단에게 들은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기도 하며 당당한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아버지를 사랑하냐는 토마스의 질문에 조한나는 사랑을 정의해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단을 사랑한 걸까. 사랑이었는데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인물 같다. 덜컥 이단이 가족들을 버리고 자신과 새롭게 시작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그녀는 상처받기를 거부하면서 남들에게 칼부림을 한 인물이다. 이단의 아내에게 칼부림을 했을 뿐만 아니라 토마스에게도 예외 없이 날카로운 단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칼을 휘둘러 피를 보는 건 상대일지 몰라도 그 피를 시각적으로 직면하는 건 언제나 그녀였다.
토마스는 자신의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에 아버지의 불륜과 조한나까지 마주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흥미로워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 것들에 심취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원고를 보여주면서 자신을 표출한다. 돌이켜보면 토마스에게 있어서 목표는 잘하는 것이었다. 저들보다 잘하는 것. 토마스에게 저들은 자신의 원고에 대해 쓴소리를 한 아버지도 아니고 세상에 많은 작가들도 아니다. 그가 별로라고 느꼈던 자신의 일상들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토마스는 자신의 세계인 창을 깨고 뛰쳐나가길 원하는 사람이고 결국에 그렇게 변화하는 인물이다.
항상 술에 취해서 잔을 홀짝이는 제랄드는 갑자기 토마스 앞에 심리상담사의 형태로 나타난다. 후반부에 밟혀지는 이야기지만 얘기하자면 제랄드는 토마스의 진짜 아버지다. 주디스와 이단이 불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이고 동시에 주디스가 사랑했던 사람이다. 제랄드는 토마스 곁을 맴돌며 그의 세계를 지켜봤고 그 자체가 제랄드의 세계가 되었다. 이미 토마스의 이름을 잘 알면서 토비, 톰이냐고까지 묻는 그는 진정한 스토리텔러였다. 극 중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제랄드의 재능은 그대로 토마스에게 전해지면서 이단과 토마스의 관계가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문들은 모두 각자가 지향하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미미, 조한나, 토마스, 제랄드뿐만 아니라 이단과 주디스도 자신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먼저 이단에게 세계는 재능이 없어서 작가를 그만두고 시작한 출판업의 성공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핏줄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들 토마스도 이단의 세계다. 토마스가 사무실로 찾아와 조한나와의 관계를 토로했을 때 그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짐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에겐 없는 재능이 있는 토마스에게 '봐줄 만하네'로 일관했던 그도 진정으로 자신의 세계인 토마스를 사랑했기에 그의 성공을 위해서 나름대로 힘쓰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디스의 세계는 가족이다. 평화로운 가정이 지속되는 것이 그녀의 세계임을 너무나도 잘 아는 토마스도 조한나에게 어머니가 망가질 거라고 말하면서 이단과 헤어져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녀가 우울성 조울증을 앓는 이유가 이 세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옛 연인, 토마스의 친부를 향한 마음이 상충되면서 스스로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 영화에서 윤리라는 것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있다. 소위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기도 했고, 설마 했던 설정이 사실관계로 드러났을 때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앞에 말한 것처럼 감독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들로 일반적인 사랑을 이끌어낸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일반적인 사랑의 표본은 무엇인지, 그게 몇이나 되는지 계속해서 의문점만 늘어나는 것 같다. 뭐든지 다 가능할 것 같았던 뉴욕에서 이런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비가 왕창 내려서 이 모든 세계들이 다 부서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려운 대사와 공감되지 못하는 이야기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결국에 썸머가 가고 다시 시작된 어텀처럼 헤피엔딩인 것도 아직 쿨하지 못한 내게 그저 한번쯤 봐줄 만한 영화가 되버린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