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는 길은 언제나 밝다.
버스를 타고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종로의 길거리를 바라보는 일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종로에는 어르신들이 참 많다. 12시 수업에 가는 것도 버거운 나인데 어르신들은 참 부지런도 하시다.
어떤 날은 종로 3가 맥도널드 앞이었다. 할아버지들이 길가에 쭈그려 앉아 무언갈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돗자리에 신발 한 켤레, 손목시계 하나, 따뜻한 군밤 모자 하나, 가죽 장갑하나 다 오래됐지만 새것 같은 물건들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간간히 찾아오는 자식들이 입으라고, 신으라고 사준 운동화, 모자, 속옷.
차마 새것 꺼내 입기 어려워 옷장 깊은 곳 작은 서랍에 쟁여두고, 입으라고 사다 주고, 먹으라고 사다준 물건과 음식들을 입에 올리며 잔소리하는 자식들을 향해
'아직은 괜찮아, 입을 만 해.'라고 답변하는 그 세월의 사람들.
더 이상 세월에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 빈자리엔 그 새 물건들이 자리 잡겠지.
또다시 누군가의 남겨진 새것들이 되겠지.
- 12월 9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사실 다시 시작하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아요. 졸업을 해야 했어요 지난 시간 동안. 저는 그 한 달 조금 넘게를 텅 빈 문서작업창에 까맣고 작은 글씨들을 두드렸다 다시 지웠다를 반복하며 지냈어요. 논문을 쓰겠다고 말한 제가 원망스러웠어요. 다 합쳐서 50장이 좀 안 되는 진심이 적게 담긴 글을 보고 있자니 다시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쓸데없는 시험도 봐야 했어요. 형식적인 거 말이에요. 그렇게 사고 싶었던 책을 미루고 컴퓨터 자격증 시험, 토익시험 책들을 여러 권 샀어요. 시험을 보는 것도 다 돈이더라고요. 이 한 달 동안 제가 제일 많이 한 생각은 부지런히 지내지 못했던 3년 하고도 10개월의 시간이었어요. 근데 좀 슬프더라고요. 사실 저는 좀 열심히 살았거든요. 맞아요 저보다 더 열심히 산 사람들도 차고 넘칠 거예요. 힘들다고 하면 힘들 수도 있고 즐거웠다고 하면 즐거웠다고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어요. 열심히 사는 데에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시작은 부모와 경제였지만 마지막은 결국 제가 됐어요. 그 사실만으로도 죄책감과 행복이 같이 몰려왔어요. 그래서 조금 더 나를 위한 것들을 많이 해보기 시작했고 그걸 위해서 돈을 벌었어요. 근데 지금 가장 괴로운 건 나를 위한 것들을 지금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삶을 살 거라고 하나 둘 전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글 쓰는 건 잘 돼가?이에요. 아니요. 저는 글을 완전히 못쓰고 있어요. 영화를 보지도 글을 읽지도 않고 있어요. 그렇게 된 제가 너무 싫어요. 사실 전 여기서 지치면 안 되거든요. 작은 것들에 상처받고 그 상처를 돌보지도 않고 있으면 안 되거든요 저는. 저는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지금 제가 너무 가여워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존재 같아요.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아요. 뭘 하면 행복했었는지도 알아요. 근데 그게 지금 안돼요. 행복이 변한 것 같아요. 제게 행복이란 영원한 무언가였는데 말이죠. 다 지나갈 거라고 말해주세요. 지금의 나도 나라고 해주세요. 저는 다시 시작하기보단 이상태에서 다시 쓰고 싶어요. 힘들었는데 사실 진짜 힘들었는데 이 정도 인 줄을 몰랐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