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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Mar 29. 2017

지우개 소리

 형제가 많은 집안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나또한 오빠의 옷과 오빠의 물건들은 물려받았다. 어린시절 오빠가 했었던 구몬학습지를 선생님없이 공부시키고자 했던 엄마는 손수 오빠의 연필자국들을 하나하나 지우개로 지워갔다. 옆에 쪼그려 앉은 나는 엄마의 지우개질 솜씨에 놀랐다. 쓱싹쓱싹 새것처럼 지워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는 한껏 힘주어 지워나갔다. 엄마가 지우개질을 할 때마다 휙휙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지우개질을 참 잘해! 엄마가 지울때만 휙휙소리가나!"


사실 그 소리는 엄마의 손목에 자리한 팔찌가 학습지 종이를 스치면서 소리를 낸것이었고 그걸 잘 지우는 소리로 알아들었던 나를 향해 엄마는 미소지으며 사실을 알려주었다.


 요즘엔 지우개질을 할 일이 없다. 보고서를 항상 키보드를 두들기며 쓰고 썻다지웠다를 버튼하나로 끝낼 수 있어서 지우개를 살 일이 없다. 심지어 내가 지금 사용하는 지우개는 대학교에 입학할때 3묶음 중 가장 첫번째이고 나는 지금 현재 졸업학년이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지우개질을 했다. 중고로 산 책에 자국들을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손수지워나갔다. 나도 새것처럼 쓰고 싶은 마음에 마음속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지워나갔다. 뭔갈 지울때면 엄마손목에 반짝이던 노란팔찌가, 바닥에 수북하게 쌓이던 지우개가루가 더 선명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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