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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Apr 03. 2017

기억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세상 살다 보면 내 주머니 채워주는 일에도 소홀할 때가 있다. 오늘 난 저번 주 통째로 출근부를 쓰지 않은 걸 깨달았고 매일 아침 7시에 눈 비비며 일어난 나의 노력이 0이 되는 마법을 경험했다. 다행히도 근무하시는 선생님께서 처리해주시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실수를 해본 적 없는 나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 쓸데없는 거는 잘 기억하는데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이미지 사진 찍은 날짜라던가... 요즘 자꾸 왜 그러는지  중요한 일에 정신이 나가 있다.


 영화를 볼 때도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아물론 모든 면에서 그런 건 아니고 비주얼적인 것은 잘 기억하는데 당시 흘러나왔던 음악이라던가 2줄을 꽉 채우는 대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집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글을 쓰려면 다시 영화를 빨리 감으며 인용할 대사를 찾는다. 


 영화관에서는 다시 영화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하며 관람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심지어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대사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인터넷을 뒤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내가 내린 조치는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먼저 어둡다. 뭐가 보여야 쓰지. 두 번째로 내가 뭘 쓰긴 쓰는데 전에 쓴 글과 겹칠까 봐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줄을 맞춘다. 오늘 처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시도했는데 앞으로 한번 더 도전할지 아니면 그냥 원래대로 영화에 초집중을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억나는 것에 대해서만 글을 쓰자니 너무 자의적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한다던데(메멘토) 나도 좋은 대사나 좋은 장면들만 생각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는데 사실 나는 영화인들에게 영화적인 글을 소개하고자 함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것에 대한 것을 적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저번 주에 영화 관련 글을 쓰시는 교수님(말이 교수님이 그냥 평론가이신 듯)이 내 글을 보고는 영화적 용어에 대한 언급이 없고 양식을 지키지 않았으며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글을 수정하셨고, 그 글이 기사로 올라갔다. 나는 그 글이 맘에 들지 않는다. 내 글을 누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자랑용 자소서가 아니다. 누가 내 글을 평가할 순 있겠지만 내 글을 수정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고 그 글에 내 이름을 박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억력에 대해 이야기하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나의 미숙하고 불완전한 글에 대해서는 인정하나 이 글을 수정하고 싶지도 영화를 아는 척하는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 내가 본 것만 쓸 거다. 이쯤에서 나는 영화평론에 대한 꿈을 접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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