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무사협회 법무사지 1월호 드라마 온 넷플릭스
「블렛츨리 서클(The Bletchley Circle)」 시즌 1, 2.(2012~2014, 영국 ITV)
해외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들도 ‘영국의 대표 드라마’ 하면 떠올리게 되는 「셜록」.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소시오패스로 그려지는 주인공 ‘셜록’의 캐릭터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셜록은 물론 결과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범죄를 예방하긴 하지만, 추리를 통한 사건해결에 희열을 느낄 뿐 피해자들의 아픔과 슬픔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 「셜록」의 캐릭터에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인간적인 사람들이 피해자들과 공감하며 그들을 위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물 「블렛츨리 서클(The Bletchley Circle)」을 권한다.
2차대전 암호해독가들, 살인사건에 뛰어들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던 1943년, 영국의 블렛츨리 파크 암호 해독기관에서 수잔(안나 맥스웰 마틴), 밀리(레이첼 스털링) 루시(소피 런들), 진(줄리 그레이엄)은 독일군의 암호를 듣고 해독하는 일을 진행한다. 패턴을 분석하는 능력과 남다른 감각, 순간 암기력과 여러 언어의 능통자였던 이들은 독일군이 파병을 보내는 비밀암호를 알아내고,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로부터 9년 후, 절대 평범해지지 말자고 했던 그녀들은 그러나 블렛츨리에서 일했던 기억은 묻어둔 채 평범한 여성의 삶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가정주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주부가 된 수잔은 라디오에서 동네의 미혼여성들이 한 명씩 살해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블렛츨리 파크에서 일했던 경험과 천부적인 패턴 해석능력을 통해 그 사건이 한 살인자에 의한 연쇄 범행임을 알아낸다.
범행 행적의 분석을 통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한 수잔은 전직 군인이었던 남편 티모시(마크 덱스터)의 도움으로 경찰을 찾아가 그 정보를 알려주지만, 자신이 예측했던 장소에서 피해여성이 발견되지 않자 자신의 분석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옛 동료였던 밀리와 루시, 진을 찾아간다.
그리고 네 여성은 고민 끝에 살인자와 피해여성들을 함께 찾기로 결심하고, 이후 살해당할 위험 속에서도 결코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블렛츨리 서클」이 기존의 추리물들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주인공, 네 명의 여성들이 돋보이는 공감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로의 상황, 그리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타인들의 상황에 공감하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피해여성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살인범을 잡기 위해 여러 위험을 무릅쓴다.
'절대 평범해지지 말자'던 다짐과는 달리 그녀들은 비록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지만, 특별한 능력으로 전쟁에서 숨은 활약을 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일상에서 쉽게 간과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함께 연대해 사건을 해결한다. 이는 보통의 추리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면이다.
역사가 외면한 여성 영웅들의 연대기
블렛츨리 서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영국군의 암호해독 기관이다. 독일군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발명하기도 했던 영국군은 적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언어학자와 십자말풀이 전문가 등 전문 인력들을 고용해 블렛츨리 서클에서 일하게 했다.
드라마 속 네 여성과 같이 실제로 지능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많은 여성들이 당시 블렛츨리 서클에서 암호해독자로 일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전쟁 당시에만 인정을 받았을 뿐, 전쟁 후에는 평범한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영웅들이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들은 역사에서 잊혀져 외면 받았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연합군의 승리 후 그 승리에 기여했던 남성들과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잔은 매우 총명한 머리를 가졌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돌보고 시간이 생기면 신문에 나오는 십자말풀이를 하는 게 전부인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에 힘도 좋은 밀리는 생각이 깨어있는 인물이지만 정작 직장에서는 성희롱을 당하는 등 차별에 시달리고, 루시는 뛰어난 암기력의 소유자이지만 별 볼일 없는 직장에, 별 볼일 없는 남자를 만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팀의 리더, 진 역시 도전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동네 도서관에서 일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반면, 전쟁에서 함께 활약했던 남성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자신들의 능력을 살려 관련된 업무를 하고, 직장에서도 승진해 윤택하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간다.
전쟁 이후 극명하게 엇갈린 삶을 사는 남성과 여성의 대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피해자에게 투영함으로써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해 내는 그녀들의 공감능력이다. 그들은 사건해결을 통해 더 높은 지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더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이미 이 드라마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추리물”이라며 “잔인함이나 선정성 또는 로맨스 따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평하고 있다. 기존의 비슷비슷한 추리물이 지겨워졌다면, 지금 넷플릭스 앱을 열어 「블렛츨리 서클」을 감상해 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