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추적추적 내렸다. 시장 골목에 낮은 처마들이 빗물을 받아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깔리는 가운데, 생선구이 골목 앞에는 손님들이 길게 나래비를 섰다. 좁은 골목에는 생선 기름 냄새와 사람들의 체온이 뒤섞여, 식당 안은 후끈하고 바깥은 눅눅했다.
주인장은 계산대 앞에 서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줄이 길든 짧든, 비가 오든 해가 뜨든—그 얼굴에는 무언가 오랜 세월 끝에 도달한 사람 특유의 결이 배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듯, 모든 것을 다 흘려보내겠다는 듯, 그 경계 어딘가에 그가 서 있었다.
가게는 이층으로 되어 있었다.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그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올라갈 때는 그릇을 들고, 내려올 때는 빈 쟁반을 끼거나 무거운 설겆이 거리를 들고. 한 번도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몸이 이미 그 경사를 외우고 있었다. 다들 키가 작고 말라 있었다. 손목은 가늘고, 앞치마 끈에 묶인 허리도 얇았다. 그 뼈대가 말해주는 것을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일이 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는 쉬지 않았다. 들어오는 손님, 나가는 손님, 포장 봉투의 수, 비어 가는 테이블—시선이 가게 안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 눈빛 안에는 긴장이 있었지만, 두려움의 긴장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오래 버텼다,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전해지는, 조용하고 단단한 자신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앞 테이블을 보았다. 갈치조림 뚝배기에서 아직 국물이 끓고 있었다. 붉고 진한 양념이 갈치 토막을 감싸며 자작하게 졸아들고 있었는데, 그 빛깔이 곱고 탐스러워 군침이 먼저 알아챘다. 테이블에는 이미 구워진 모듬구이가 나왔다. 고등어, 임연수, 갈치—석쇠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싹 익은 껍질 가장자리가 살짝 들려 있었고, 그 틈으로 하얀 속살이 보였다. 비 오는 날, 생선구이라는 것이 이렇게 당연한 음식이었나 싶었다. 거창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몸이 먼저 원하는 맛이었다.
계산대는 주인장의 자리였다. 아마도 삶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해진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 앞에는 늘 그가 서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아들내미도, 아주머니들도. 다만 동남아시아계로 보이는 아가씨만이 가끔 그 자리를 슬쩍 채웠다. 베트남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눈동자는 상황 전체를 순식간에 훑어 필요한 것만 골라냈다. 주인장이 잠깐 자리를 비울 때, 혹은 손님이 몰릴 때—그녀는 말없이 계산대 앞에 섰다가, 주인장이 돌아오면 다시 조용히 빠졌다.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이 가게의 흐름을 오래 몸으로 익힌 사람의 것이었다. 작고 귀여운 얼굴에 광대뼈가 도드라졌고, 손가락은 가늘었다. 하지만 그 몸 안에 느슨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타지에서 혼자 버텨온 사람의 팽팽함이, 그 작은 체구 어딘가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때 마침, 혼 밥을 마친 할머니 한 분이 계산대 앞에 섰다. 조용하고 작은 몸집이었다. 할머니가 아가씨에게 주인장을 불러달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음식에 문제가 생겼을까. 주인장이 다가왔다. 할머니는 사만 원을 여러번 세면서 현금을 내밀었다. 이천 원이 부족하다고, 나중에 갚겠다고, 아니면 자기한테 오라고 했다.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변명도, 과한 부탁도 없이, 그냥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말투였다. 그리고는 포장 하나를 부탁했다.
주인장이 웃었다. 아마도 기약 없는 수표라는 걸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웃음은 대수롭지 않다는 체하는 웃음이 아니었다. "나중에 오실 때 주세요. 근데 그땐 사천 원 주셔야 해요." 할머니도 웃었다. 주인장은 할머니에게 건강하시라고 했고, 자주 들르라고 했다. 할머니도 들리겠다고 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돈도 아니고, 확실한 약속도 아닌—그냥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끔 생겨나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가벼운 신뢰 같은 것이 그 속에 있었다.
계산대 한켠에는 키가 크고 구부정한 아들내미가 서 있었다. 삼십 대쯤 되어 보였다. 젊다고 하기엔 눈가에 무언가가 내려앉아 있었고,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 그 자리가 낯선 듯 보였다. 구부정한 자세는 키가 커서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어딘가를 향해 몸을 낮춰온 사람 특유의 습관처럼도 보였다. 그의 눈은 아버지와 달리 쉬지 못했다. 할머니가 서 있는 위치가 애매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자리를 안내했다. 말은 짧았고, 손짓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움직임 안에는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익숙한 척하는 긴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사천 원을 농담처럼 얹어 웃을 때, 그의 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잠깐 지나갔을 것이다. 저래도 되나. 장부엔 남겨야 하지 않나. 그러나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웃음소리에 소리 없이 눌렸다. 그는 아버지처럼 웃지는 않았다. 다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가 언제부터 여기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무언가를 꿈꾼 적이 있었는지도. 다만 그의 손이 능숙하게 포장 봉투를 집고, 손님의 동선을 살피고, 아버지가 미처 보지 못한 자리를 채우는 것을 보면—그가 이 자리를 모르는 척해도, 그의 자리는 이미 그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버지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점심용 포장 들이 시장 곳곳으로 나갔다. 앞선 줄은 줄어들고, 내 뒤의 줄은 다시 늘어났다. 비는 여전히 가늘게 내렸다. 가게 안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넘쳐났다. 그 소란 속에서도 이상하게 조용한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도 모든 것은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