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과 무지 사이에서
현장을 아는 사람은 종종 포기하고,
현장을 모르는 사람은 종종 틀린 문제를 푼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 질문이 있다.
2026년 3월
병원 원무과에서 15년을 일한 사람이 있다. 그는 환자가 퇴원할 때마다 서류 세 장을 손으로 옮겨 적는다. 같은 정보를 세 번. 전산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다. 시스템이 세 개라서다. 각각 다른 회사가 만들었고, 서로 연동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이 일을 한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한다. 그게 일이니까.
스타트업 창업자가 병원 디지털화 아이디어를 들고 그를 찾아왔다. 창업자는 신이 나서 설명한다. AI로 서류를 자동화할 수 있다고. 원무과 직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속으로는 안다. 이 병원이 시스템을 바꾸려면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고, 원장 설득에 6개월, 계약에 1년, 직원 교육에 또 반년이 걸린다는 걸. 창업자는 그걸 모른 채 돌아간다. 아이디어는 훌륭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현장을 오래 겪은 사람은 문제를 잊어버리고,
현장을 모르는 사람은 해법을 모른다.
현장에 오래 있으면 생기는 일이 있다. 불편이 배경으로 물러난다. 처음엔 "왜 이렇게 되어 있지?"라고 묻던 것들이, 어느 순간 "원래 이런 거야"로 바뀐다. 이건 나태함이 아니다. 적응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출근할 수가 없다.
문제는 그 적응이 문제 인식 능력까지 같이 마취시킨다는 점이다. 물류 창고에서 10년을 일한 사람은 발주서 오류율이 7%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게 업계 평균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7%는 그냥 업계 상수다. 그런데 외부에서 보면 7%는 엄청난 숫자다. 매출의 몇 퍼센트가 거기서 새고 있는지 계산해본 사람이 없을 뿐이다.
체념은 경험과 함께 온다. 그래서 경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문제를 못 보는 역설이 생긴다. 현장인은 문제의 지도를 가장 정확하게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지도를 볼 동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반대편엔 외부인이 있다. AI 툴을 쥐고 "뭔가 만들어볼까" 하는 사람들. 이들의 문제는 실력이 아니다. 실력은 이제 AI가 상당 부분 채워준다. 문제는 그들이 보는 불편의 위치다.
배달앱을 매일 쓰는 사람은 배달 UI를 개선하는 아이디어를 낸다. 은행 앱이 불편했던 사람은 핀테크 아이디어를 낸다. 맞다. 그것도 문제다. 그런데 그건 이미 수백 개의 팀이 달려들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비자로서 겪는 불편은 너무 많은 사람이 공유하기 때문에, 이미 누군가 해결하려 했거나 구조적인 이유로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이다.
진짜 아픈 문제는 대개 소비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정산 시스템 뒤편, 물류 허브 안쪽, 공문서가 오가는 공무원의 책상 위.
그 고통은 SNS에 올라오지 않는다.
외부인은 자신이 못 보는 게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틀린 문제를 푼다. 그리고 현장인은 맞는 문제를 알면서 풀려고 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실패가 한국 AI 창업 생태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혁신은 어디서 오는가. 두 사람이 제대로 만나는 순간이다.
체념한 현장인이 자신의 문제를 꺼내놓고, 그것을 처음 듣는 외부인이 "이게 왜 이렇게 되어 있어요?"라고 묻는 순간. 현장인은 그 질문을 받고 멈춘다. 오래된 체념이 잠깐 흔들린다. "맞아, 왜 이렇게 되어 있지?" 그 균열에서 뭔가가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이 패턴이 반복된다. 해당 산업에서 수년을 보낸 뒤, 전혀 다른 세계와 충돌한 경험이 있다. 의료계에서 일하다 IT를 만난 사람, 제조업 현장에서 뛰다 실리콘밸리를 처음 본 사람. 그들의 강점은 두 세계 모두에 발을 걸쳤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 사이의 낯섦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두 세계를 아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 사이의 이질감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트랙이 너무 분리되어 있다. 의사는 의사끼리, 개발자는 개발자끼리, 물류 종사자는 물류 종사자끼리 모인다. 커리어 경로가 선형적이고, 이탈은 손해로 여겨진다. 병원 원무과 직원이 스타트업 행사에 올 이유가 없고, 개발자가 공장 현장을 방문할 이유도 딱히 없다.
해커톤은 그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인데, 실제로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한 문제를 푼다. 심사 기준이 1주일 매출이면 당연히 소비자 B2C 아이템이 나온다. 깊은 산업 문제는 1주일 안에 검증이 안 되니까. 구조가 깊이를 막고 있다.
그리고 체념한 현장인은 자신의 경험이 가치 있다는 걸 잘 모른다. 15년간 원무과에서 일한 것이 스타트업 아이디어의 씨앗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직장 생활이었으니까. 경험을 문제로 번역하는 언어를 배운 적이 없다.
AI 툴은 계속 좋아진다. 실행력의 차이는 계속 평준화된다. 그 속도에 맞춰 "더 잘 만드는 법"을 쫓는 것은 점점 의미가 없어진다. 남는 경쟁력은 결국 하나다. 풀 만한 문제를 찾는 능력.
그 능력은 강의로 가르칠 수 없다. 책으로 배울 수도 없다. 다른 세계와 충돌하는 경험에서만 온다. 그리고 그 충돌은 설계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낯선 현장에 들어가 보는 것, 다른 산업의 사람과 밥을 먹어보는 것, 내가 만든 것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쓰는 사람을 따라가 보는 것.
체념한 현장인에게는 "당신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사실 문제입니다"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무지한 외부인에게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줄 현장이 필요하다.
혁신은 그 두 가지가 만나는 좁은 틈에서 태어난다. 체념과 무지 사이, 그 불편한 공간에서.
더 좋은 도구가 아니라,
더 나은 충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