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아침부터 집 안에 큰 소리가 났다. 익숙하고도 위협적인 소음.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거실에는 아빠와 조카 셋만 있었다. 대충 상황을 살펴보니 둘째 조카 욱이가 아빠한테 혼나고 있었다. 11살 욱이는 뭔가를 요구할 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목이 새빨개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곤 했다. 그래서 욱은 어른들에게 자주 혼이 났다. 특히 아빠가 그렇게 예의 없이 구는 것을 참지 못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온 집 안 곳곳을 뛰어다니는 것도 견디지 못했다. 그날 아침도 평소 같은 꾸지람이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아빠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점점 더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본인도 자제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는 신호였다. 더는 침대 위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
욱이는 고개를 숙이고 구석에 서 있었다.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벌벌 떨고 있었다. 첫째와 막내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그 모든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혼나고 있는 이유가 뭔지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티브이는 지지직 소리를 내며 켜져 있었고, 아빠 손에는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욱이가 리모컨으로 이것저것 만지다가 외부 입력을 누른 모양이었다. 아빠는 어떻게 해도 정상적인 화면으로 돌아오지 않는 티브이를 보고 망가졌다고 생각한 눈치였다.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 있는 아빠 손에서 리모컨을 낚아챘다. 조작 버튼 몇 가지를 누르자 지지직거리던 회색 화면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빠를 한 번 쳐다봤다. 고작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가 내 눈알도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아빠와 조카들을 다른 공간으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떨고 있는 욱이를 세게 끌어안으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욱이는 쉰 목소리로 동생이 볼 만한 만화를 틀어 주려다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아빠는 거실에 서서 아직도 화를 내고 있었다.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면, 그런 나 자신이 싫어 더 화가 나기도 하니까. 공부는 안 하고, 그런 멍청한 머리로 어떻게 살 거냐고, 맥락 없는 말들로 비난을 이어갔다. 이리저리 서성이던 아빠는 우리가 있는 방 문을 거칠게 열었다. 나는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빠는 눈 알을 굴리며 말했다. 핸드폰이니 닌텐도니 하는 것들 한 번만 더 붙잡고 살면 죽을 줄 알라고. 다 부숴버릴 거리고 위협했다. 나는 '아빠' 하고 짧게 불렀다. 욱이는 내 팔을 꼭 붙잡았다. 아빠는 나랑 눈이 마주치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욱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욱이는 실수한 것뿐인데, 할아버지가 너무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방금 할아버지가 한 말은 믿지 마.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고모가 약속할게."
익숙했다. 아빠가 욱이에게 내뱉는 말들이. 나도 어릴 때 들었던 말이었으니까. 아주 사소한 일로 억울할 만큼 혼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때 들었던 말과 눈빛이 얼마나 마음에 두고두고 영향을 주는지도. 아빠가 늘어놓는 말은 예외 없이 끔찍했고 그때마다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멍청하게 굴어서 맨날 아빠한테 혼나는 걸까.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주기나 할까. 아빠 입 밖으로 꺼내져 나온 말은 모두 '진실'이고 거기에 못 미치는 건 다 내 잘못이었다. 나중에는 내 존재가 개미만큼 작아지고 작아져서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은 딱 하나였다. 아빠가 하는 말들이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내 눈을 마주치고 너는 충분하니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존재 말이다.
몇 분째 아무 말이 없는 욱이를 바라보며 사실 나도 조카들에게 할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모라는 걸 떠올렸다. 오빠와 나는 아빠의 성미와 눈빛을 복사해 놓은 것처럼 닮아 있었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큰 눈을 부라리며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까지. 그게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식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빠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아는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알아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끔찍할 뿐이었다. 마치 폭력적 성향이 내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욱이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볼 때면 꼭 아빠를, 오빠를 그리고 나를 따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화들짝 놀라곤 했다. 이게 바로 폭력의 대물림이라서.
책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에서 나오는 지넷의 사례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내가 왜 이런지 알았으니까요. 내 형제자매들이 왜 그런지도 이해하게 됐어요. 어머니가 왜 우리를 그렇게 길렀는지도요. 내 아이들을 위해 내가 이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도, 내가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라는 것도 이제 알았어요."
이 문장을 읽자마자 고모가 엄마에게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온 집안 식구들을 내쫓았어요. 얼마나 무서웠던지. 저는 항상 큰 오빠 뒤에 숨어 있었어요. 하루는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니까 아버지가 장남이 이럴 때 일을 해야 한다며, 공장 나가서 밥도 얻어먹고 돈도 벌어 오라고 내보냈어요. 그때 오빠가 13살밖에 안 먹었는데. 하루는 오빠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배가 고파서 남의 집 옥상에 올라가 막 상추를 뜯어먹었다고. 옆에 놓인 장독대에 고추장이 들어 있길래 그거랑 찍어 먹었다고요. 우리 오빠 진짜 고생 많이 했지요."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지넷의 이야기와 맞물려 다르게 해석됐다. 아빠도 할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고. 폭력은 할아버지로부터 세대 간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아주아주 키가 높은 탑을 만들어냈다. 내겐 아빠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아빠도 피해자였다는 감각은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욱이가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이 악순환을 더 늦기 전에 내 손으로 끊어 내야 한다는 것을. 폭력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실을 알아내는 것보단 멈추는 게 더 중요한 거니까. 거창하고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폭력으로부터 꺼내 줄, 너를 비난하는 저 말속에는 오류가 가득하니 듣지 말라고 귀를 막아줄, 어른 한 명, 그런 존재가 되어 주겠다는 다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 그것이 방치됐던 어린 시절의 아빠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