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를하는 이유
제가 마음공부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생존’ 때문입니다. 시작이 그랬고, 지금도 오직 그 이유 때문입니다. ‘생존.’ 제가 마음을 공부하고, 알아 가고, 연습하고, 되돌아보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랍니다. (살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달라요) 시작 당시에는 살아남기. 살고자 하는 발버둥. 마지막 남은 희망 줄 같은 거였어요. ‘왜 난 지금 이 모양 이 꼴일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어요. 지금도 찾은 건 아니지만,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고,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일과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가 보이는 것 같아 더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당장 살고 싶은 몸부림이 마음공부라는 길로 이끈 거죠.
생각해보니, 거의 5년이 되어 가네요. 물론 학구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당장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 길인가? 하는 마음으로 명상이나 심리학에 발을 들여놓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이게 맞나? 하는 마음으로 심리서를 조금씩 접한 시간도 길었고, 꼭 해야 하나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주게 된 집단 상담까지.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관련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받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마음공부’ 왜 하는 걸까요? 저는 생존이라고 했지만, 다른 이들은 어떨까요? 난 잘 살고 있는데, 하는 분들은 정말 전혀 필요 없을까요?
‘온고이지신’의 정신으로 공부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가다듬어간다면 최소한 허물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조윤제, 『다산의 마지막 공부』, 청림출판(2018), 66)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르기에 ‘마음공부’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도 모두 다를 것 같아요. 여러분은 ‘마음공부, 상담’과 같은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바로 떠오르나요?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흔히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사진이 생각날 수도 있고, 티비에서 종종 보았던 심리 치료를 위한 역할극을 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할 거고, 마더 테레사나 자애로운 모습의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어요. 어쩌면, 심리에 몸 담고 있는 상대방이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보고 듣고 나를 분석하지는 않을까 고민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분명 마음공부를 하면 많은 이점이 있어요. 나를 알게 되고, 대인 관계도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말, 예쁜 말만 하는 게 마음공부의 결과물은 아니에요. 물론 상대방과 제대로 소통하면서 상처 주고받지 않기 위해 말하는 방법을 고민하긴 해요. 하지만 예쁘고 긍정적인 말만 하는 그런 대화를 위한 공부가 아니랍니다. 그러니 상대방이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기대를 하면 안 됩니다.
마음공부를 하고 가장 많이 받는 오해거든요. 나쁜 말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상대방에게 좋은 이야기만 해줄 거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모난 이야기를 하면 “넌 마음공부한다면서, 심리 공부한다면서 왜 그런 식으로 말하냐?” 혹은 “마음공부한다면서 이 정도는 좀 받아주면 안되?” “그냥 네가 이해해줘!” 이런 말도 하고요. 당당히 요구합니다. 넌 마음공부했으니까 내가 이러는 걸 이해해야만 한다고요. 마음공부가 뭐길래 말이죠.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다 마더 테레사쯤 된다고 오해하시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만큼 성장하고자 하는 길이지만, 마음공부의 기본 전제는 저의 생존을 위해, 그러니까 힘들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잘 살기 위한 방식을 배우는 하나의 길입니다.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서다. (조윤제, 『다산의 마지막 공부』, 청림출판(2018), 188)
당장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거죠.
반대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긍정 마인드 셋에 집중하셔서 스스로를 그렇게 이끌어요.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공부를 하고 그 지식을 활용하여 말하거나 생각하는 분들이 있죠. 그중에서 말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장황하게 하거나,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거나, 내용은 무척 긍정적인 것 같은데 듣는 당사자가 공감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또 무한한 긍정적 태도로 사람들에게 긍정을 강요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상대방이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모습들 또한 마음공부에 대한 오해나 착각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마음이나 나 자신에 대해 공부하면서 빠지지 않는 게 바로 ‘긍정’이라는 요소입니다. ‘긍정적으로 살아야만 한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면 그러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인생에 언제나 밝은 면은 있다.’처럼 좋은 문장들이 참 많죠. 그런 태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긍정이라는 이름 하에, 상대방의 기분과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를 주입하려 하고, 강요하는 태도는 이름만 다른 폭력일 뿐이죠. 마음공부를 하는 건 세상을 그저 아름답게 보기 위한 게 아니에요. 마냥 순수한 태도로 좋은 점만 보기 위해 세뇌시키는 과정이 아니죠. 그런 태도가 당장의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정신 승리라고 할까요), 그건 일단 해당 상황 밑바탕에 깔려 있는 문제를 잘 살펴 알게 된 후 인정하고 나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지키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경계를 알고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무작정 문제와 타인을 좋게 보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좋은 건 좋은 거고, 문제는 문제예요. 저란 사람은 문제 안에 있을 수도 있고 문제밖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걸 알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의 경계를 알아내 지키고, 상대방만의 경계 또한 지켜주어야 하는 거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잘 관찰해서, 나를 포함해서 분노의 구성에 관련된 주변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단초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정호, 서광, 전현수, 『부처님의 감정 수업』, 불광출판사(2020), 18)
자기 경계를 지키지 못하면 자기 보호도 못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상대적인 가해자가 된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출판사(2018), 181)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감정과 나의 생각,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를 분명히 하여 그 안에서 책임지게 합니다. 외부에 너무 의존하거나 집착하게 만들지도 않고, 배척하게 만들지도 않는 거죠. 오히려 외부는 외부 그대로 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경계선을 찾는 것이죠. 당연히 ‘나는 나고 상대방은 상대방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건 우리의 물리적인 구분일 뿐 그 외의 부분에서 많은 얽힘이 있어요. 타인의 감정과 말과 태도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죠.
당연히 타인에게 비난받으면 화가 나고 속상합니다. SNS만 봐도 좋아요 개수나 댓글 내용에 일희일비하게 되죠. 누군가가 칭찬해주면 춤이라도 추고 싶기도 하고요. 마음공부는 그 영향에서 조금 벗어나는 방법과 이유를 찾아 그를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내가 사라지고 오로지 화나 분노만 남아 있다면 그 악영향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옵니다. 긍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이요. 마냥 긍정적으로만 상황을 보면 제대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없어요. 혹은 인정이나 사랑은 긍정의 요소예요. 하지만 안달복달하다 보면서 탐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내가 사라져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들로 채워져 정작 나 자신은 사라지는 거예요. 마음공부는 극단을 치닫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게 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지키고 도와주는 거죠.
물론 나만 챙기는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생각하게 되죠. 관계 자체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반드시 해야 하기도 하고요. 인간의 행복은 기본적으로 대인관계에 기반한다고 하니 결코 무시할 순 없어요.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잘 지내기 위해 내가 잘 서야 하는 거랍니다. 사람 인 人 한자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그만큼 사회나 대인관계가 중요하다고 배우지요. 전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세워서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해요. 내가 스스로 서진 못해도, 아무리 상대방이 잘 받쳐주고 버텨준다 해도, 받쳐줄 힘은커녕 내 몫의 힘이 없으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인간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적응하는 독립적이고 개별적 존재다. 그 사실을 믿으면 함께 울며 고통을 나누면서도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과 근원이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들이 지닌 경계를 인식해야만 모두가 각각 위엄 있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출판사(2018), 184)
남을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 주는 사람을 천사 같다고 하시나요? 우리가 접하는 천사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거 혹시 아시나요? 영화나 소설과 같은 곳에 나타나는 천사들은 우리에게 무조건 옳다고 해주거나, 상대방의 욕심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을 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상황에서 극단의 상황으로 오냐오냐 해주며 부추기는 인물은 대부분 악마랍니다. 천사들은 좋은 방향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죠. 내가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명확히 (혹은 애매모호하게) 알려주고, 선함이 무엇인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방향을 알려 주어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 자신이 단단해지도록 도와주죠. 그러고 보니 어쩌면 마음공부는 천사가 되는 길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올바른 길을 알게 하고 그 길을 따라 가게 하니까요. 많은 부분에서 주변에도 그러한 영향을 펼칠 수 있게 되기도 하고요.
마음공부를 하며 천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