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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an 15. 2023

입 닫고 책을 어떻게 읽어?

묵독은 이상한 행위

  여러 가지 독서법들이 있다. 각 독서법의 장단점이 있고, 사람마다 주로 활용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방법은 묵독이다. 독서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은 단연코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책에 스며드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외국어를 습득하거나, 아이들이 학습할 때, 혹은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힘들 때 낭독을 이용하게 된다. 그와 함께 낭독에 대한 중요성에 논하는 글도, 심지어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자료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기원후 383년경,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는 성 암브로스(Saint Ambrose)가 묵독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고백록>에 기록해 두었다. “그가 읽을 때 그의 눈은 책장을 훑고 머릿속으로는 의미를 찾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으며 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혀조차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방식으로 책을 보고 있는 성 암브로스. 이 대목을 유추하자면, 묵독이 이상한 것이며 낭독이 인간들에게 적합한, 그래서 그 고대의 철학자들이 쓰던 방식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묵독이 아니라 낭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까지 한다. 낭독이 인간에게 더 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독서를 할 때 사람에게 가장 편한 독서법은 낭독일 수 있을까? 이에 긍정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생각보다 낭독은 힘들고, 묵독과 비슷하게 읽고 있지만, 집중력이 흐려져 내용을 놓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 옛날 사람들은 낭독을 주로 하고, 묵독은 이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을까? 정말 인간 본성에 낭독이 더 적합했기 때문일까? 소리를 듣고 내는 것이 물론 글을 쓰고 읽는 것보다 수월한 작용이긴 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 분명한 구분선이 있다.    


고대 사회에서 읽기는 오늘날 전형적인 묵독, 즉 조용하고 사색하는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리는 행위였다. 고대와 현대의 읽기 목적이 다른 것처럼, 고대의 쓰기 행위 역시 현재와는 현저히 다르다. (중략) ‘글쓰기’의 구조적 특징들이 없다. (중략) ‘읽는 행위’를 구술 행위와 동일시했던 시대적 특성을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할 만하다. (52)
글쓰기 방식이 간편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묵독도 훨씬 더 수월해졌다. 띄어쓰기를 비롯한 글쓰기의 여러 가지 구조적인 특징이 7세기 경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때부터 읽기를 기본적으로 ‘조용한’ 행위이자 주로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행위로 보았다. (53)

<읽기 격차의 해소> - 알렉스 퀴글리


  읽기 위해서는 쓰여 있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대 시기는 쓰기 행위가 아직 소리 내지 않고 읽는 행위를 뒷받침해 주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목적 자체가 소리 내어 읽히기 위해서였다. 타인에게 읽어 주기 위해 쓴 글이었기에 소리 내지 않고 읽는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7세기 경이되어야 여러 띄어쓰기, 쉼표, 마침표 등 묵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등장하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가 조용한 읽기 행위를 이상한 행위로 취급한 건 아직 묵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매체가 부족했고,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달랐던 것이리라. 그러므로 오늘날의 낭독과 그 예전의 낭독은 다른 시점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읽기 행위를 쉽게 여겨선 안 된다. 지금은 각종 인쇄물들이 사방에 존재하고, 그 내용들을 읽고 파악하는 일이 마땅하지만,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전체 역사로 봤을 때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기에 그만큼 습득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움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현대적 ‘읽기’인 묵독을 단번에 하지 못하고 힘들어함을 인정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어른 스스로도 읽기 행위가 당연하고, 어려움이 있겠냐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묵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환경적인 요인도 많지만, 이러한 인류 뇌 발전의 이유도 고려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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