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읽어 주세요, 더!!
아이가 한글을 떼자마자 부모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이제 좀 자유로워지길 기대한다. 특히 책육아를 하는 분들은 많은 시간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아이가 클수록 책도 양이 늘어나서 목도 아프고 힘들어진다. 물론 어릴 때도 상당한 권수를 읽어주다 보면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잃는 인어공주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얼른 아이가 한글을 습득하고 혼자 읽기를 바란다. 그렇게 혼자 책을 붙들고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하고 이제껏 읽어준 부모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가. 문자 학습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쨌든 아이가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마자 드디어 책 읽어주기 행복한 개미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축배를 든다.
하지만 곧 너무 이른 축배였다는 걸 알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아이 스스로 즐겁게 책 읽기에 빠져드는 읽기 독립으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하고, 혼자 책 읽기를 거부한다. 혹은 혼자 책을 읽더라도 결국은 책을 읽어달라고 들고 온다. 낭독이 좋다고 하여 낭독이라도 시켜보면 극구 거부하고, 이 갈등이 심해져 책 읽기 자체를 거부하는 시기마저 오는 경우도 있다.
왜 아이의 읽기 독립은 가까운 듯 이리도 먼 것일까? 아이들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데도 어째서 부모에게 여전히 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 걸까?
사실 읽고 ‘이해하는’ 행위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다. 단순히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읽은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억지로라도 읽게 되어 글자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행위가 저절로 일어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수도 있다. 스스로는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읽기를 거부한다. 이건 명백히 그 활동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이 상당히 많다. 인터넷 댓글에서 ‘세줄요약’을 해달라던지, 혹은 너무 길게 쓴 글쓴이가 이상한 거라던지 말하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문자를 쓰고 읽어서 내용을 주고받는 행위가 인간들에게는 결코 ‘저절로’ 일어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제대로 된 ‘읽기 독립’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글자를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글을 익히고 난 후 숙련된 독자가 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글자가 그림처럼 인식한다. ‘길동’이라는 이름에 쓰인 ‘길’ 자와 ‘동’ 자를 그림처럼 받아들이고 알아본다. 그러다 천천히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는 원리를 알아차리고 그에 맞게 발음한다. 그러면 글자 하나가 아니라 단어를 한눈에 인식하고 발음하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문장을 떠듬거리지 않고 읽을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글자를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로 이행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물 흐르듯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바로 내용을 이해하고 행간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단계에 올라선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읽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때 진정한 독서독립이 이뤄지는 것이다. (<아홉 살 독서 수업>, 한미화, 41)
단순히 글자를 알고 소리 내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바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외국인들도 쉽게 학습할 수 있는 한글을 금세 배우고 읽는다. 읽어낸 스스로를 놀라워할 정도로 우리 한글은 배우기도 쉽고 읽기도 쉽다. (세종대왕 만세!) 하지만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다. 외국인들이 읽었다고 해서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입력값과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어에 대한 상당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자신이 방금 식당에서 읽은 ‘물은 셀프’라는 글자가 ‘물은 직접 떠다 마시라’는 내용인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아이들이 글을 읽게 된 행위는 내가 알고 있는 소리와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를 연결하는 과정이다. 이제껏 내가 듣고 알게 된 세상을 문자랑 연결하고 있는 중이다. 제일 먼저 소리와 내 세상을 연결하고, 그 지식을 이제 문자랑 연결할 때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아이의 뇌에서는 저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는 그 내용을 인지하는 데 뇌 속에서 지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더라도 문장으로 연결해서 이해하기까지는 오래 걸린다. 단어를 읽고 이해하는 시간이 빨리져야 만 문장 단위로 이해가 가능해지고, 문장 단위로 이해하는 시간이 짧아져야만 문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제야 행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어 우리가 바라는 읽기 독립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한글을 읽게 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읽기 독립’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아이가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읽기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고 한글만 읽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읽기 독립 호락호락하게 여기지 말고, 부디 아이가 스스로 이해하고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아니 더 이상 읽어달라고 하지 않을 때까지 부지런히 읽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