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림은 거들뿐.
“이제 글자 읽을 수 있어?”
씻고 나서 옷은 안 입고 침대에 놓인 책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물어봤다. 아이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눈길이 글자 쪽으로 가 있는 걸 확인하고 했던 질문이다. 글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여서 늘 그림을 구석구석 바라보는 눈길을 기억하고 있는지라 모를 수 없는 눈길이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네가 글자를 읽을 수 있든 없든, 엄마는 네가 원하는 만큼 책을 읽어줄 거야. 지금 글자 읽고 있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라고 이야기 하자, 그제야 안심하듯이 “응.”이라고 했다.
아직 7살. 부모님의 품 안에서 부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멋진 그림들을 보면서 읽는 독서 시간이 무척 소중한 시간이다. 이토록 아이들은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그 행위 자체를 너무 사랑한다. 어릴 때는 안겨서, 커서는 옆에 붙어서 온기를 나누며 자신과 감정을 소통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읽어주는 그 시간을 무척 사랑한다. 그러니까 읽기 독립만 하면 더 이상 책 읽어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 금지! 아이들이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어도, 여전히 부모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사실 여러 육아서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이 읽을 수 있게 되면 부모님들이 책을 안 읽어줄까 봐 걱정한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 아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단 한 번도 글자를 읽을 줄 알면 네가 알아서 읽어라,라는 식으로 이야기도 한 적이 없는 데 말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아이, 너무 재미있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 읽어줘도 되는지 물어보면 동의하는 아이 등 기꺼이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오래오래 읽어주자.
물론 아이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책에서 오래오래 책을 읽어주라고 강조한다고 해서 싫어하는 아이를 잡아다가 강제로 읽어줄 필요는 없다. 스스로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읽어 달라고 가지고 오지도 않고, 읽어 달라고도 안 하며, 읽어 줄까라고 물어보면 싫다고 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아마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온전히 즐거운 책 읽는 시간으로 누리고 있다. 이런 친구들은 이후에 책에 대한 내용을 나누면서 간단히 관심을 표하는 정도로 좋다.
그럼 언제까지?
듣기와 읽기 수준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 같아진다. 그전까지는 읽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것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아이들이 혼자서 읽을 때는 이해하지 못할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때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듣기 수준과 읽기 수준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다 큰 아이에게도 책을 꾸준히 읽어 주게 되면 부모와 자녀,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정서적 유대감도 형성된다. 또한 아이의 귀에 고급 단어를 넣어 주어 그 아이가 눈으로 책을 읽을 때 단어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짐 트렐리즈, 북라인)
부모의 책 읽어주기 운동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짐 트렐리즈이다. 책날개에는 “요람에서 10대까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세요.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실 요람 이전,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10대 아이들에게도 가능하다면 읽어 주라는 것이 그의 지침이다. 부모 손을 떠난 것 같은 그 10대들까지 말이다.
저자는 10대까지 읽어주어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명시한다. 그중에서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 바로 이해 차이이다. 듣기와 읽기에서 이해 능력이 중2, 즉 15세는 넘어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으로 읽는 능력이 해줄 수 없는 더 높은 수준의 것들을 부모의 입을 빌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자신이 읽을 수 있는 건 즐겁게 읽으면 된다. 하지만 더 많은 세상을 열어 주고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부모가 읽어주는 책이다. 어른들이 단지 책을 읽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책을 읽어주고 들어줌으로써 소통할 창구가 하나 열린다는 것도 귀한 이유다. 친구들이 좋아지고, 중요해지고, 질풍노도가 오면서 아이들은 종종 스스로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잠자리에서 읽어주는 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식탁이나 거실에서 무심결에 읽어 준 구절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는 시간을 가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읽기 독립을 했다고 해서 무 자르듯이 책 읽어주는 활동을 멈추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책 읽어준다고 하는 우리의 호의를 더 이상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때까지 읽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