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거들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 된 것 같다. 영어 관련 업종만 해도 엄청나고, 종사자는 당연히 그보다도 훨씬 많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영어에 대해 고민은 기본적으로 안고 가며, 어떤 도움을 줄지 알아보고 또 알아본다. 그중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는 아무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를 노출시킬 것인지, 한국어인 모국어를 먼저 습득한 뒤 영어를 노출시킬지이다.
이는 비단 부모들만 하는 생각이 아니다. 실제로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를 완전히 습득한 뒤에 시작할지, 아니면 같이 할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이다. 당연히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같이 시작한다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 언어 다 발달하며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하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고, 후자는 모국어를 통해 언어 발달 과정이 한 번 습득된 뒤라 이를 활용하는 장점이 있다. 독서심리학에서 알게 된 ‘능숙한 독자’들이 하는 행동을 연결 지어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능숙한 독자는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이해 전략 -> 독해). 글을 이해하기 위하여 능숙한 독자는 어려운 부분을 다시 읽기도 하고, 잠시 멈추어 생각하기도 하고, 핵심어를 훑어보기도 하고, 글의 특성(예:장르)을 활용하기도 한다. (중략) 직접, 추론 매개 모형은 이해 전략의 사용이 추론 기능을 증진한다고 가정한다.(이해 전략->추론). (<독서심리학>, 폴라 J. 슈와넨플루겔, 낸시 플래너건 냅, p333, 사회평론아카데미)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지문을 이해하려고 한다. 단순히 단어, 단어를 해독하는 게 아닌 지문을 이해하는 독해로 가는 과정에서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을 사용한다. 어려운 부분을 다시 읽어 보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 음독을 해보기도 한다. 핵심어를 찾아보려고도 하고 글마다 가지는 특징을 고려해서 읽기도 한다. 게다가 추론하기 위한 방식도 활용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들을 저절로 활용하게 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읽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그림책에서 글밥이 조금씩 늘어나는 책으로 넘어가는 과정 또한 녹록지 않다. 하물며 외국어는 어떠한가?
능숙한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읽기 전략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아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단번에 외국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외국어를 읽는 과정 자체로도 많은 작업 기억을 많이 쓰는데, 전략을 고민하고 구사하기 위해 추가적인 작업 기억을 활용해야 하니 힘든 게 당연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익숙한 모국어에서 그 전략들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야기한다. 국어를 잘하고 독서가 탄탄했던 아이들이 외국어를 늦게 시작하더라도 금방 따라잡는다는 이야기. 실제로 모국어로 능숙한 독자는 기본만 잘 잡아 주면 외국어에서도 능숙한 독자가 될 수 있다. 같은 길이기에 활용하는 방법만 알면 자연스럽게 적용할 줄 알게 되는 점이리라.
속된 말로 ‘말귀를 알아듣는 것’도 중요하다. “잘한다!”라는 말이 정말 잘한다는 말인지, 못했지만 반어법을 활용하여 비꼬는 말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즉, 문맥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 이는 모국어를 통해 문장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고 고려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를 모국어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를 통해 해보고자 한다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3학년은 10대를 시작하는 시기로 이제 어느 정도 학습능력을 갖추었고, 학교에 머무는 시간도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즉, 늘어나는 교과목 수와 수업시수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인지능력과 체력이 준비된 것입니다. (중략) 모국어 구조가 탄탄하게 자리 잡혔기 때문에 영어를 배울 때 모국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중고 영어공부 로드맵>, 허준석 외 4인, p76, 서사원)
우리나라 영어 교육 과정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를 시작한다. 10살이 되면서 모국어를 발달시키고 뇌 속에서 언어를 활용하는 시냅스가 연결된다. 한 번 발달한 시냅스를 통해 연결된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면 이를 통해 다른 언어를 발달시키는 데까지 활용할 수 있다. 둘을 동시에 하면서 발달시키는 데 두 배의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모국어를 통해 먼저 길을 만들어 놓으면 다른 언어를 배울 때는 처음 길을 만들 때처럼 힘든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특히 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신경세포들의 중요한 연결 고리가 거의 완성되는 특별한 시기인 ‘결정적 시기’에 이런 언어 발달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 기간을 10~12년 정도로 보기 때문에 급하게 외국어까지 밀어 넣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모국어를 활용하여 외국어를 발달시키는 전략도 꽤 유용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