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프로필 사진작가의 고민
후방 주의. 주차할 때도 쓰는 말이지만 19금스러운 것을 보고 있을 때도 쓴다. 뒤를 조심하라는 말. 남사스러운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란 소리다.
가끔 공공장소에서 일을 한다. 운영하는 브랜드 중에 바디프로필이란 걸 찍는 브랜드가 있는데 이 사진들을 홍보하는 작업이다. 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문득 뒤통수가 따갑다. 내가 남사스러운 사진이나 구경하는 치로 보이면 어떡하지.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때로는 약간 부끄러울 때가 있다는 게 아직도 큰 고민 중 하나다.
대학 다닐 때 광고홍보학을 부전공했다. 그전에는 광고홍보가 하나인 줄 알았는데, 수업이 시작되고 광고는 광고고 홍보는 홍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흔히 광고라고 알고 있는 것 말고, 홍보학이라고 해서 영어로는 Public Relations다. 제품이나 서비스보다는 주로 논쟁점을 다루는데, 경영체의 대외적 관계를 관리한다. 예를 들면 기업이 무엇을 잘못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홍보 활동을 해서 기업 이미지를 관리할지 다루는 것 따위를 생각하면 된다. 설명이 무색하게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식했던 나는 그 시절 처음 알았다.
수업 중에 케이스 스터디로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이 나왔다. 잘못한 기업이라도 사과를 하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좋지 않은 전략이다, 태안반도 회복을 위해 지원하는 쪽으로 풀어야 한다 같은 홍보 전략을 배웠다. 그런데 그 수업 내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교수님께 여쭸다.
“교수님. 혹시 홍보일을 하시면서 기업이 잘못한 게 맞는데, 사과할 수 없어서 속으로 힘드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압니다. 그런 점 때문에 홍보일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분들도 계세요.”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바디프로필을 찍는다. 다른 사진에 비해 난이도가 좀 더 있어서 단가가 좀 더 센 편인데, 효자 상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내하며 운동하고 식단 하며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들을 찍는다. 급찐급빠가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며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너무 무리해서 찍으면 안 된다고. 한 번에 완벽한 변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그저 운동에 흥미가 생기고 건강식을 경험해 보는 습관 만들기에 외려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도 이 일을 하면서, 이 일을 내가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때가 많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식단을 해 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리는 일과 일률적인 미의식을 선동하는 일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인다. 내 생각에 섹시함이라는 미의 기준이 건강함과 크게 관련되어서다. 건강함을 아름답게 표현하려다 보면 섹시하게 표현될 때가 많다.
살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건강함과 떳떳함을 충분히 표현하면 된다. 남사스럽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그 평균값을 찾아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해 본다.
문제는 내가 나름대로 세운 선을 살짝 넘을 것 같은 의뢰를 받을 때 생긴다. 우리를 찾아온 손님이 원할 때다. 원하는 만큼을 표현해 주지만, 이러다 잘못된 미의식을 선동하는 꼴이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그 선이라는 게 수학처럼 정확한 게 아니어서 나의 컨디션에 따라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괜찮아 보였던 게 또 어떤 날은 선 넘어 보인다. 아주 헷갈린다.
간혹 작가님의 사진에 실망스럽다는 돌이라도 맞으면 더 흔들린다. 누군가에게 나의 사진은 남사스러움의 선을 넘었기 때문일 텐데, 모든 사람을 맞추려 하다 보면 또 미의식에 관한 나의 세계관이 침범당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살색이 많지만 남사스럽지 않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스스로가 가진 가치관과 하는 일이 맞지 않아 생기는 괴리를 메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안에 기름을 흘려서 바다를 망친 기업을 옹호하는 일을, 먹고살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을 가상의 홍보인력을 상상한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이 기업체의 발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최대한 덜 욕먹게 만드는 일이다. 그렇지만 한 번씩 태안 현지에서 일하다가 주민들과 마주치면 문득 자괴감이 들 수 있겠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바디프로필은 나의 가치관과 맞는 일인가. 혹시 다른, 어쩌면 틀린 일일까. 바디프로필 덕에 직원들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줄 수 있다고. 남사스러움이 아닌 건강함을 표현하겠다고. 사람들의 건강한 습관 만들기를 응원한다고 하는 말은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자기 합리화(정신승리)인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어쩌면 언젠가는 홍보일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가상의 홍보인처럼, 나도 바디프로필을 그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방간 환자였던 손님이 한계 이상의 인내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기념으로 바디프로필을 찍고는 그 결과를 보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 나의 내적 갈등이, 오늘보다 나은 사진을 내일은 찍게 해 줄 거라 믿으며.
이 글이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에게'란 주제와 부합할까 고민했다. 애초에 내가 좋은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 이 주제를 들고 나왔던 게 아니구나. 나도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함께 고민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글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서 썼다. 많이 부족한 한 인간이 사진 찍는 일을 하며 어떤 난관에 빠져있는지 들여다보는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다. 아마 여러분은 이 문제를 나보다 더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