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고 또 고단한, 그 30대의 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고

by 여르미

엄마가 된 뒤에 눈물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누군가 육아의 괴로움을 토로해도


'그건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

라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세상 모든 엄마들이 짠하다.

아이는 엄마의 시간과 에너지를 먹고 자란다.

아이가 크는 것을 보는 건 기쁨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단하다.


도망가고 싶어진다.

혼자 있고 싶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퇴근도 없는 그 일을 마치고,

새벽에 혼자 식탁에 앉아

아이가 깰까봐 걱정하며 책을 읽던 나날들.



그런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시작부터 마음이 서걱거렸다.

그 고단하면서도 힘들었던 많은 밤들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시인을 꿈꾸는 미혼의 마흔살이다.

그녀에게 몇 년 전, 이혼한 여동생이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제 누군가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고

또 누군가는 '육아'를 담당해야 했다.



그녀는 '집안일'과 '육아'를 떠안게 된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른다.



거실을 치우자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대로 자고 싶었다. 하지만 흰 종이 앞에 앉아야 했다. 쓸 수 있든 아니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1초만이라도 흰 종이 앞에 앉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시인이, 시를 쓸 수 없다는 것.



그건 어떤 의미일까.

고댄 육아와 집안일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애쓰지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단한 주인공은

이내 좌절하고 만다.

그녀는 필사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았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의 전공이, 마흔살이라는 중압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조카들에게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나의 현실이, 내가 자처한 족쇄에 엉켜 탈출할 수도 없는 이 집이, 나에게는 육중한 관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는 30대라는 시간은

육아에도 지치지만, 사실 커리어에도 지친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아무것도 못이룬 것 같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절박감은 똑같다.


그냥 이렇게 살다보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아침 7시 반이 되면 아이와 남편을 깨운다.

아이 밥을 먹인 뒤,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다음, 출근 준비를 한다.

그 아침의 시간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1분 1초가 무척이나 소중하고 급박하다.




옷을 다 갈아입은 아이가 물을 쏟았다.

젖어버린 옷 때문에 아이는 울기 시작하고

황급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옷을 벗긴다.

아. 옷을 갈아입히는 시간은 계산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서둘다 보면 어느새 어린이집 버스는 와있고

나는 아이를 품에 끼고 달린다.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되던 시간들.



아이가 세살이 될 때까지 나는 이상하게도

책을 한 장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주인공이 문장을 한 줄도 적어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시간은 주인공처럼 그렇게 흘러갔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네."
"누가 살지 말래?" 나는 엄마를 쳐다봤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데도 못 가는 건 결국 식구들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집을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녀는 사실 쓸 것이 없어

쓰지 못한게 아니었다.

쓸 것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쓸 시간이 없었고,

머리속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고,

자기자신에게 집중할 틈이 없었다.



그런 짐을 나눠주고자 하는 남자친구와

그녀는 결국 헤어지고 만다.



"당신의 감정보다 동생분 살길이 더 중요한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행복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고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짐을 나눠 짊어지는 것도 싫고요?" 끄덕끄덕.




그녀는 사랑까지도,

육아를 위해 포기한다.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들인 노력에 적당한 대가를 받고 싶었다.



고생한다고, 수고한다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일상에 지친 가족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말을 전하지 않았다.







결국 사람은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게절이 시작되고, 봄이 오고,

어느새 겨울이 오듯이.

그 때에 맞춰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육아도 그렇듯이,

엄마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시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주인공처럼 시를 필사하면서

자신의 언어를 길어올리는 일일 수도 있고

나처럼 남의 문장들을 읽으며

리뷰 노트를 쌓아올리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그 시간에 악기를 연주하고,

외국어를 배우거나, 혹은 춤을 출 것이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그런 꿈을 가진 30대들을 위한 책이다.



결국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침내 시를 쓰고 등단을 하게 되었을까?




지금은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현실 그 자체'를 파고드는

김이설 작가의 이 책은

한 줄도 쓸 수 없었던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 지망생들이

읽기 좋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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