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계 일주하는 스님의 특별한 여행기

<다만 나로 살뿐>을 읽고

by 여르미


나는 여행책 덕후다.

에세이는 잘 안 읽지만 여행 에세이는 좋아한다.

(요렇게 '여행책 추천' 포스트도 쓸 정도로 좋아한다 ㅋㅋ)


https://blog.naver.com/graymarket/222099408756



특히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 불가능한 지금,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다만 나로 살뿐>은 그런 여행 에세이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바로 '스님의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2년간 5 대륙 45개국.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실 절에서는 예전부터 '산문 밖을 나서지 말라'

는 가르침이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는 바깥으로 나다니며 정신 팔지 말고

공부와 수행에 전념하라는 말이다.

원제 스님 역시 그 말씀에 따라 출가 이후로

대부분 절 안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렇게 수행한 지 6년째 어느 날,

스님은 세계일주를 결심한다.

수행 중 공부가 머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그럴 때 떠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할 때, 새 일을 하고 싶을 때.

지금까지의 나와 작별을 고하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여행이 분명 있는 것이다.

스님은 마음의 눈이 열린다면,

세계의 여러 곳에서 다양한 스승을 만날 거라 생각했다.




이 책은 그런 수행자의 조금 특별한 수행기이자,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카우치서핑



이 여행기는 카우치서핑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홈스테이'를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상에서 '집을 제공하는 자'를 찾아

그 집에서 머물며 여행하는 것이다.

스님은 돈이 부족해서 카우치서핑을 택한다.

거기서 불교에 관심 있는 호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세상과 깨달음을 배워나간다.





여행은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와 기억을 남긴다.

하지만, 배낭여행의 묘미는 아무래도 '사람'이다.


사람과의 만남.


자연의 풍광도 좋고, 다양한 체험도 좋지만

사람 사이의 만남이 역시나 가장 오래 남는다.




스님인 저자에게 있어 불교

모든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며 중심이다.

그는 세계 곳곳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과 삶의 방식을 들으며 소통한다.



출처 : 원제스님의 블로그




마음챙김 농장





이 책에 나오는 곳 중 가장 가보고 싶던 곳은

태국의 치앙마이에 있는 '마음챙김'농장이었다.

이곳은 수행을 중심에 두고 일을 하며

일상을 살아나가는 연습을 하는 수행농장이다.



이곳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묵언이 요구되는 아침과 점심 식사 전

수행자들은 짤막한 글귀를 하나씩 읽는다.

그리고 저녁 명상을 마친 다음

20년간 수행을 하다가 일반인이 된 농장주인과

수행담을 나누며 마음챙김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상수행을 하는 공동체는 이렇게

'일'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하는 곳이 많다.

그런 곳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나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찜해두었다.

(거기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국이라니! ㅎㅎ)




삶이 뭐 거창한 건가요




이 책은 '인연'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스님은 청두에 있는 판다 생태공원에 갔다가

펜스 위에 멍 때리고 있는 레드 판다를 본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가 절로 떠오르는 판다의 초연한 모습.

스님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사실 생각이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



인연은 끊임없이 뒤바뀌고 흐르는 것이기에

잡아서 붙들어 매야할 인연도,

떠나서 잊어야만 할 인연도 사실상 없다.

변화와 흐름이 우리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는

사실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흐름으로 인정하고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역시 스님이다.

나는 그냥 '오 판다. 귀여워. 멍떼리네♥'

라고 생각했을 텐데 스님은 판다의 모습에서도

깨달음을 한 자락 발견하곤 가신다.

이럴 때 보면 여행이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간다




한편 이 특별한 여행을 하는 스님은

우리와 비슷하기도 하다.



번지점프를 시도하는 부분에선

'아..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하고 후회하며

'가세가세 어서가세, 저 피안의 언덕으로 어서 가세'

하며 <반야심경>을 외운다.

(스님도 번지점프가 무서우시군요!)





또, 세계 일주를 하는 장기 여행자들에게

반드시 찾아온다는 여행 매너리즘 또한 겪는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계속 보다 보니

그저 익숙해져서 관성에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 매너리즘이다.



그는 인도에서 강을 바라보다가 퍼뜩 깨닫는다.

여행에서 꼭 무언가를 얻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이 짧은 여행 동안 나름의 성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삶은 그 어떤 목적 없이, 강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도 있다.



아무렇지 않으면 왜 안 된다는 걸까.
삶과 여행에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포기를 해버리자.



그렇게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대신 포기한 스님은

'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 생각하며

즐겁게 다시 여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일매일이 정면승부다.



여행을 떠난 여행자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눈앞으로 생생한 삶을 살라.
눈앞으로 돌아와
눈앞에서 존재하고
눈앞으로 살아가라.
그러면서 인연에 따라 나로서 존재하라.


여행은 우리의 감각을 깨워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깨닫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모든 여행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아름다운 책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운동 습관 만드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