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먹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을 읽고

by 여르미



독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음식을

알고 먹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 앞에 버터로 볶아 맛을 낸 줄기콩 요리가 놓였다.
구운 파프리카 향이 코를 자극했다.
"먹어!" 방 한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틀러는 항상 독살 위험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에겐, 자신의 음식을 대신 시식해줄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다.


"자리에 일어나는 것은 금지다!
입 다물고 앉아 있어라!
음식에 문제가 있다면 독이 빠르게 퍼질 것이다!"



주인공은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하는 사람이었다.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결혼한 지 1년 된 신랑도 전쟁터로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먹고 죽을지도 모르는 음식을

시식하는 여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정말.. 숨 막히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콜리플라워 향이 가득한 식당에 앉아
라디치오를 아삭아삭 씹었다.




참 그래도 삶이란,

그리고 식욕이란 아이러니하다.

이런 생명을 좌우하는 상황에서도

식욕이 생기고, 또 음식을 음미하게 된다.

비스킷은 향긋하고 바삭했다.

케이크는 눈물 날 만큼 맛있었다.

전쟁이라 항상 음식은 부족했기 때문에

독이 든 음식일지라도 먹는 순간만큼은 달콤했다.






요거트 한 스푼을 올린 케이크는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내가 누릴 수 있는 비정한 달콤함을 마음껏 음미했다.




하지만 삶이, 그리고 소설 속 삶이 마냥 달콤할리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괴로워한다.

주인공은 같은 시식하는 여자들 속에 끼지 못하고

남편은 실종되었다는 편지까지 받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나치 장교가 접근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인지 아닌지도 깨닫지 못한 채

장교와의 사랑에 빠져든다.





나는 죽고 싶었다.
지난 수개월 내내 나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일어서는 대신
바닥에 엎드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살고도
더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죽고 싶어서

히틀러의 음식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독이 들어 있을까? 나는 죽게 될까?

이런 죄를 지은 나는 드디어 벌을 받게 될까?

그녀는 음식을 삼키며 그렇게 되뇌었을 것 같다.

남편을 버리다니.

그리고 심지어 나치 장교를 사랑하다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변명.

상황이 아무리 처참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자신을 끝내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가져온 음식을 꺼내놓았다.
두 장의 행주 위에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샌드위치를 함께 먹었다.
짐칸에 갇힌 사람들끼리도 '인간다운 식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전쟁을 피해

짐칸에 실려 베를린으로 향한다.

그녀는 거기서 처음으로 '인간다운' 식사를 한다.

사실 음식이 맛있냐 호화롭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사람을 마치 가축처럼, 생명 없는 존재처럼 여기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찾고자 했던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중'이었다.






소설은, 평범한 아내였던 한 여자가

전쟁과 공포 속에서 얼마나 혼돈에 빠지고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결국, 그녀는 모든 선택의 책임을 짊어진다.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2018년 스트레가상, 반카렐라상과 함께

이탈리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캄피엘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소설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를 다룬 히틀러 책은 많지만,

이 소설은 그 당시 평범한 '독일인'을

'이탈리아 작가'가 썼다는 데 그 독특함이 있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에

여러 증언이 담긴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다 보면 항상 드는 생각.

"나도 주인공 입장이라면 정말 이렇게 할 것인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대답은 자신이 없어진다.

어렸을 땐, 옳지 않은 행동은 절대 안하리라 다짐했지만

나이가 드니 이제는 알 것 같다.

환경은, 상황은 사람을 180도로 바꿔놓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은 뒤로 줄기콩(그린빈)을 못 먹겠다.

스테이크에 가니쉬로 나오는 그 아삭아삭하고

풋콩 맛이 나는 향을 사랑했었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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