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을 가야만 할까?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를 읽고

by 여르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마흔이 특별한 나이는 아니다.

마흔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가지 않은 길,

즉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진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냥 어제와 똑같이 마흔을 맞이하며,

일상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하지만 마흔이 되고 보니,

자꾸 저 시가 생각이 난다.


가지 않은 길.

살지 못했던 삶.


그 길들, 가능성의 길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자꾸만 과거가 생각나




<어떡하죠, 마흔입니다> 저자는

'성공한' 마흔의 철학과 교수이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 걱정 없이 살아가는 행운아다.

자신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흔이 되고 보니,

그에게 묘한 공허함이 엄습했다.

이를테면 앞으로 이룰 학문적 성취,

퇴직과 노년의 삶 등이 떠올랐던 것이다.

또한 그를 한층 더 괴롭혔던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후회였다.





저자는 어렸을 때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한편으론 그의 부모는, 아버지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하고 싶던 철학을 선택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다.

시인이나 의사가 되었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나빴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자꾸

과거를 생각하는가?

그것도 마흔에 들어서?



왜 자꾸 대학을 선택하던 열아홉 살의 나로

돌아가고야 마는 것일까?








선택의 중요성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흔의 나는,

이미 가능성이 다 잘려나간 나뭇가지와 같다.

물론 지금도 노력하면 의대를 갈 수 있고,

취미로 시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열아홉의 내가 꿈꾸던

그런 의사나 시인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겐 선택의 문이 열려 있었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의 운명은 정해졌다.

방향과 길이 정해지고 문이 닫혀 버렸다.

이제 마흔의 그에겐 선택이 없다.



선택하지 않을 삶에 대한

선택권 말이다.





마흔의 우리는 대부분 이런 상황에 처한다.

일에서 성공했든 성공하지 못했든.

우리는 갚아야 하는 주택 대출금이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다.

물론, 알고 있다.

누구나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으리라고

꿈꾸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틀렸다는 느낌이 분명해진다.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인 것이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그렇다면, 그 가지 않은 길을 찾으려고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저자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자신이 어느 정도 원하는 삶에 가깝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조언이 필요할까?




저자는 쇼펜하우어를 인용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무언가를 배우는 것처럼

'미완성인' 행위가 있다.




반면, 이해하거나 생각하는 것처럼,

'완성을 포함하는' 행위가 있다.

이런 완성형 행위는 '완료형'이다.

즉, 하나가 완성되고 나면 또 새로운 일을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그 사람에게 반작용을 일으킨다.

그 속엔 공허함만 있을 뿐이다.

만족이 언제나 과거나 미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미완료적인 행동을

해보라고 추천한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걷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귀가와는 달리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산책은

완료해야 하는 목표가 없다.

어슬렁거리는 산책은 현재에 살게 해 주며,

과거나 미래에 다다르길 원하지 않는다.




그냥 걷는 것에 가치를 두자.

그것 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그 순간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목적지에 와 있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쓴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행위.

또는 특별한 목적 없이

철학을 행하고 배우는 것.

그런 행위들은 우리를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삶을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스스로 소멸되지 않는 것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다.







목적 없는 행위




그래서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 본다.

중학교 시절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서른 살 무렵에는 베이커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 길도 걸어가지 못한 채,

모든 건 가지 않은 길로 남았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걸은 길을 선택했다.

발길이 닫지 않은 길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가지 않은 길을 회상하는 것.

상실 없는 삶을 바라는 것은

상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는 말과 같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중년의 위기를 피하는 게 아니다.

중년의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조언들이다.

상실감은 현실이다.

상실감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지 않은 그 길을 걸어갔다고 해서

나에게 과연 후회와 향수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가치 있는 것들,

즉 현재를 사는 삶을 찾아 나서야 한다.




목적 없이 걷는 것,

목적 없이 쓰는 것.

목적 없이 책을 읽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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