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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르미 Feb 13. 2021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라틴어 수업>을 읽고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배운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외국어란

그저 철자와 문법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

그런 재미없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학창 시절, 그리고 대학생 무렵

영어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특히 영어에 약했다.

 콤플렉스였다.

그래서인지 외국어 공부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를 배우는

대학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단순히 이렇게 말하면 정말 언어 강의 같지만

이 수업은 좀 특별하다.

학문과 공부로서 라틴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양과 지혜로서 라틴어를 배우는 것.

한 나라의 언어에 담긴 문화를 알아보고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라틴어 수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학생들은 단순한 라틴어 수업이 아니라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게 느꼈다고 한다)








공부해서 남 주자





언어는 공부가 아니다.

언어라는 것은 다른 학문들처럼

분석하기보다는 꾸준한 습관을 통해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삶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의식할 때도, 의식하지 않을 때도

언어는 습관처럼 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공기처럼.




또한 언어는 학습이 목적이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서 목적이 강하다.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지식이라는 것,

 즉 어떤 것에 대해 아는 것은

그 자체가 학문의 목적은 아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공부해서 남 주냐?"

(굉장히 듣기 싫은 그말 ㅎㅎ)



하지만 이렇게 언어를 공부하게 되면,

정말 공부해서 남을 주게 된다.

지식을 쌓는 대신 지혜를 쌓아

사회를 위해 실천하기 때문이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은

지식의 양 차이가 아니다.

배움을 나 혼자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공부해서 남을 줄 수 있느냐.

차이인 것이다.






그냥 쌩 까보자





<라틴어 수업>은 대학 강의답게 특히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특히 대학을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진리도 탐구해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각자 살아온 삶이 있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틀이 논리이고 가치관이다.

그것은 분명 우리 안에 있다.

다만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의 논리와 만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성찰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그 시기가, 대학 시절인 것이다.

.




한편 공부라는 건 단발적인 행위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라톤처럼 강약과 리듬 조절이 필수다.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아 집중이 잘 되지만,

어떤 날은 노력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상반된 두 날은 각각 별개의 날이 아니라,

공부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긴 리듬이다.

하루의 결과야 어떻듯 우리는

그날그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이건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  자체가 마찬가지겠지..)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자기 스스로 격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쌩까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자




한편 이렇게 대학생들을 위한 글들과 함께

죽음과 공부, 삶의 자세 이야기 또한 많다.




<라틴어 수업>에서 한동일 저자는

자신이 어머니와 사별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이 말은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이라고 한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문구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원으로 와서

유한을 살다 다시 영원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영원성은

타인의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관이 되어 기억으로 남았고

나의 죽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내일은 나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부모가 남긴 향기의 다음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내 몫이다.

그 기억을 밑거름 삼아

내 삶의 향기를 만들어내기를.

부모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담고

오늘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를 통해

신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평생 우리는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삶은 그렇게 죽음과 하나가 된다.






오늘 하루를 즐기자





이렇게 죽음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재의 소중함이 나오게 된다.



현재를 즐겨라는 의미로 유명한 카르페디엠은

원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에 등장하는 시구라고 한다.




'카르페' carpe 라는 말은 carpo에서 왔다.

이는 과실을 따다. 라는 의미이다.

이 과정은 사실 고되고 힘들지만

한해 동안 땀의 결실을 맺는 행복이기도 하다.

carpo에 '즐기다' '누리다' 란 의미가 더해져

'카르페 디엠' 이 탄생했다.



 오늘 하루를 즐겨라!

(저자는 이 시의 문맥상 '내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 라는 뜻으로 풀이한다고도 한다)





인간은 오늘을 산다고 하지만

어쩌면 단 한순간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지 모른다.

과거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소모한다.

(그때보다, 그때 그사람 보다,

나중에, 취직하면, 집을 사면)

재미있는 건 우리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라틴어 동사를 살펴보면

과거에 대한 동사가 현재보다 훨씬 많다.

그 시절 로마도 다르지 않았다는 의미다.



오늘의 불행이 내 이름이 행복을

보장할지 잠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은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결국 라틴어 수업은

로마 철학 수업과 같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는 것.

그것도 밑에서부터 탄탄히.




물론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고대 로마시대도 아니고,

유럽도 아니다.

하지만 꼭 그 시대, 그곳에 살아야만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삶이라는 게, 한국이라는 게

알게 뭐냐.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행복할 것이다.

마지막에 크게 웃을 것이다.




카르페디엠.

죽음의 그 순간 미소 짓기를.




+제 25회 서울국제도서전

선정도서이다.


+그래도 여전히 외국어 울렁증이 있어..

라틴어를 배울 것 같진 않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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