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를 읽고
어찌 됐건, 기분이 눅눅한 날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다.
나는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충성도가 높다.
웬만하면 전집을 다 읽는 편이다.
그래서 짜증이 가득했던 지난주,
이 책을 펼쳐든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지우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니까.
정지우 작가님의 포지션은 꽤 독특하다.
인문쪽 저자이긴 한데,
그렇다고 철학쪽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문 에세이랄까.
그의 다른 책인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처럼
인문학과 다른 걸 연결해 쓰는 타입이다.
나보다 몇 살 어리긴 하지만
같은 세대여서 그런지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책은 행복에 관한 에세이다.
그리고 시간, 사랑, 결혼에 관한
에세이이기도 하다.
사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이 제목을 보면 좀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진짜??)
어쩐지 왜 그런지 작가의 말을
들어보고 싶어진다.
왜, 행복이 거기, 내 주변에,
살포시 숨어있는 건지 말이다.
(행복 비법 좀 알려주세요 작가님!)
정지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많이 걸을 수 있어서, 혼자였던 시절에는 글을 쓸 수 있는 밤이 많아서, 돈이 없던 시절에는 읽을 책이 쌓여 있던 도서관이 있어서 그 시절이 좋았다. 어느 시절의 어떤 순간은 그 자체로 완벽했고 그런 완벽함이 이미 내 안에 가득하기에, 타인들의 부유함, 외제차나 값비싼 레스토랑의 식사는 내게 박탈감을 줄 수 없다.
이런 관점을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긴 하다. 뭐야. 그런 거 그냥 자기만족일 뿐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발전은 없다고! 하지만 그의 말대로 나에게 행복한 구석이 있는지 찾아가다 보면, 좀 마음이 편안해진다. 엉망진창인 날 속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안 될 것 같은 순간에도 커피는 늘 맛있었다. 무엇보다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 있어 좋았다.
행복은, 늘 단순하다. 어렵지 않다. 그냥 거기 있는데 그저 지나친다. 못 본다. 반면 불행은 복잡하다. 불행할 이유는 항상 여러 가지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있다.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일들도 아니고,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늘 불행에 집착한다. 가까이 있는 행복은 잊은 채 먼 산만 바라본다.
우리는 저마다의 행복과 불행을 가지고 있다. 행복의 이유는 다를 것이고, 그것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왜 행복한 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자리로 돌아와, 오늘의 행복을 찾아보자. 행복은 정말 그곳에 한 점 의심도 없이 있을 테니.
나는 자주 그렇다. 특히 일하면서 종종 느끼는데,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은 나 자신의 정체성까지 깎아내린다. 나는 뭔가 처음부터 잘못된 인간이다. 애초에 이 직업을 선택하면 안 되었으며, 너는 자격도 없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는다. 대게 여러 날들이다. 그리고 그 여러 날 동안 불행을 느낀다. 오늘의 문제가 삶 전체의 문제가 되고 만다. 정말 내 삶에 문제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let it be. 순리에 맞게,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불행은, 자신에 대한 의심은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다. 이렇게 왔다가 또 사라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래서 힘든 날에는 오히려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날이 있다.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실수하게 되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오늘의 문제다. 내일의 문제도, 내 인생 전체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이다.
가끔은 누군가의 충고보다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더 위로가 된다. 특히 그 이야기가 그 사람의 내면과 진실에 깊이 닿아 있을수록, 더 큰 위로와 공감을 느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은 느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그런 글만 읽어도 안심이 된다.
결국 개성을 이기는 건 공감이리라.
그래서 오늘은 좀 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분명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의 고민은 당신의 고민과
많이, 크게 다르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