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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르미 Apr 02. 2021

나는 브런치를 한다, 고로 존재한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척 하는 방법>을 읽고



움베르토 에코. 하면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가 유명하다.

즉 소설로서 유명한데

사실, 나는 소설보다는 에코의

에세이와 인문철학책들이 더 좋다.

세상과 역사를 보는 관점과 함께,

광범위한 독서로 얻어진 해박한 지식은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 하면

사실 책덕후라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5만 권의 장서를 소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체 서재가 얼마나 큰 컸던 걸까...)

그냥 뭐 꾸준히 읽고 꾸준히 가르치고

꾸준히 썼다는 이야기인데,

요 정도로 지식에 집착한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럼 이런 박학다식한 사람은

요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은

그런 에코의 시선이 담긴 에세이집이다.

그가 2000년부터 2016년 타계 전까지 쓴

55편의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잡지에 쓴 칼럼들을 책으로 묶어낸 것으로

가볍게 쓱쓱 읽어내려갈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나는 트위터를 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 칼럼은 제목부터 웃기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에코식 유머에 적응하게 된다 ㅋㅋ)

트위터를 하므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사실 움베르토 에코는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하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왜 이런 제목을 지었냐 하면,

한 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그 여자분은 트위터를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움베르토 에코를 빤히 바라봤다 한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트위터를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twitto, ergosum




이런 웃긴 에피소드로 시작되는

이 칼럼은 트위터를 깐다.



그는 트위터에서 표출되는 의견들은

하찮아질 수밖에 없다 말한다.

거기서는 입 뚫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기 때문이다.




트위터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다고

에코는 주장한다.

(사실 난 트위터 안 해봐서 모르겠다;;)

심지어 911테러가 유대인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다고.

또한 트위터는 이런저런 문제를 다루면서도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남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야기만 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몇몇 극단적인

정신 이상자들의 생각들이 인기를 끄는지.

그는 한탄한다.





이렇게 트위터엔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거기서 오가는 말은

모두 그냥 그 자리에만 머문다.

별 의미 없는 가벼운 의견들.

에코는 아마 이런 가벼움은 140자 이하

글을 써야 한다는 규정 때문 같다고도 한다.

아무래도 아인슈타인 이론 같은 걸 설명하려면

훨씬 많은 글자가 필요할 테니까.





핸드폰과 마법




요 칼럼은 핸드폰에 빠진 요즘 사람들을

비꼬는 에세이다.

길을 가면서도 핸드폰을 보느라고

자기 앞에 뭐가 있는지 보지 못하는 사람들,

에코는 이런 핸드폰 중독에 걸린

사람들에 대해선 자신이 뭐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인다.

(이미 그런 책이 너무 많으니까!)




에코는 이제 거의 모든 인류가

똑같은 광기에 사로잡혀있다 말한다.

그래서 더 이상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시선을 교환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주변조차 관찰하지도 않는다 말한다.

(엌... 찔리는군요... ㅎㅎ)

오직 귀신 들린 것처럼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다고 굳이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평생을 바보들의 끝없는 대화처럼 보낸다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에코에 따르면, 우리가 이러는 이유는

아마 수백 년 동안 마법이 약속해 온,

인류가 그렇게 열망하던 세 가지 소망 

하나가 처음으로 실현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소망은 무엇이냐.




첫 번째, 하늘을 나는 것.

하지만 비행기를 타야 가능할 뿐

우리는 아직 스스로 날지 못한다.



두 번째, 특정 주문을 외우면서

적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세 번째, 신비로운 힘을 통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그 꿈은 이루어졌다.

우리는 산맥과 바다를 건너서

그것도 시간의 손실 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 힘으로 말이다.





이러한 마법의 꿈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빨리빨리> 정신이다.

우리는 주문을 외워 쇠를 황금으로 바꾸고,

천사를 불러 소식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핸드폰 기술은

인간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즉시 안겨 준다.

핸드폰 버튼만 누르면 당장 시드니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이 그래도 이만큼

발전된 나라가 된 건

에코가 말하나 <빨리빨리> 정신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또한, 중세 시대 사람들이 핸드폰을 보면

정말 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웃긴 상상도 해본다.

(어찌 됐건 에코는 핸드폰이든 트위터든

이런 세상을 바보 같다 여기는 건 확실하다. ㅋㅋ)






유동 사회




이렇게 에코의 칼럼들을

쭉 읽어내려가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것.

한 번 더 비틀어 생각해 보면

그 속에는 철학과 의도, 생각이 담겨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미쳐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세상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라도

배워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원하지 않는 일만 반복하며 살아가는

바보가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 에코는

이 사회를 유동 사회로 부른다.

(이 단어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처음 썼다)

이 사회는 국가가 사라지고 있다.

국가뿐 아니라, 공동체라는 개념도

역시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개인만이 남았다.

오로지 자기만 아는 무분별한 개인.

주변엔 오직 내가 맞서야 할

경쟁자나 적뿐이다.




이런 주관주의로 근대가 흔들렸고,

확고한 기준점이 사라져

모든 것이 두둥실 유동하기 시작한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고

따라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에게 우월해 보이려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 된 세상.




에코의 말처럼 아직 우리는

이 사회를 살아갈 방법을 알진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유동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다른 세상이 오지 않을까?

어쩌면 그 새로운 방법은

에코가 그렇게 싫어하고 경멸했던

핸드폰 속 세상에서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위기의 핸드폰 속에서 기회가 있다고 ㅎㅎ)




무척 재미있는 에세이여서,

에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문득,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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