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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이상한 태국여행 2

둘째 날, 두 번의 체크아웃

by Gray Monkey

태국이 날 불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이욕 폭포 근처 이름 모를 호텔(사실 이름 있음)에서 잠을 잤다. 새벽 세 시에 한 번, 다섯 시에 또 한 번 깨고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일어났다. 어제 구입한 칫솔과 치약 최소한의 세면도구만으로 대충 씻고 침대에 앉아 잠시 명상했다. 태국에 도착해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 대충 한 끼를 때우는 것, 숙소를 이중지출 하는 것, 내 마음대로 여행이 되지 않는 것(사실 계획도 없다), 그로 인해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제 죽음의 철길에서 만나 나를 이 호텔까지 데려다준 그 친구들이 아침 8시에 오기로 했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나무 의자에 앉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아주 큰 나무가 뻗어있는 도로 위로 오토바이들이 내달린다.

어제 잠시 머무른 숙소

에라완 폭포에 가고 싶었으나 깐짜나부리 여행자 거리 호스텔에 체크아웃을 해야 했기에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8시 10분, 8시 30분... 그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할까?

방법을 찾아봐야지 생각하는 순간 멀리서 밴 한대가 들어왔다. 다행이었다.


그들은 생글생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잘 잤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물어봐주었다. 나는 한국어-태국어 번역기로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은 태국어-영어 번역기로 나에게 보여주며 대화했다. 그들은 태국 남부에서 왔고 학교 선생님들이며 단체로 투어 중이라고 했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선생님이 음료를 고르라 했다. 어제의 도시락과 간식에 이어 음료까지 사주시다니... 그들의 친절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어제는 깐짜나부리 숙소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에 아무 밴에 대고 이거 어디 가는 차냐고 대뜸 물어본다고 정신이 없어서 그들이 투어 중이고 같이 온 일행이 더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른 일행이 있음에도 나를 데리러 오느라 시간을 써준 게 너무나 고마웠다.


카페에서 한참을 이야기 나눈 뒤 그들은 콰이강의 다리에서 내리고 나는 기사님과 호스텔에 도착했다. 죽음의 철길에서 호스텔까지 무료로 태워준 것이다. 현지인의

이런 친절함에 나도 낯선이들을 환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나를 다시 깐짜나부리 호스텔로 태워다 준 기사님과 함께

두 번의 체크아웃. 사실 아유타야로 바로 떠나버릴까 하루만 더 깐차나부리에 머무를까 고민했다. 사실 배가 너무 고팠고, 태국 도착 후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서 또 이동하는 게 무리일 거라 생각했다.

결국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하고, 호스텔 하루 더 연장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먹을 게 많고 많은 태국이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래도 채식 식당들이 많아서 군데군데 찾아보면 먹을 것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비건 식당에서 점심 식사(두 끼나 먹음)

태국의 낮은 뜨겁다. 습하지는 않지만 낮동안 모든 것이 데워져 열기로 후끈하다. 사람들이 낮에는 잘 걸어 다니지 않는다. 더위를 피해 카페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해가 질 무렵 깐차나부리 스카이워커로 향했다.

걷기에 좋은 시간. 살짝 시원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강가를 걸었다. JJ나이트 마켓까지는 걸어서 18분. 여유롭게 둘러보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깐짜나부리 길거리의 동물들

나이트마켓은 꽤나 붐볐다.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시장이라 들었는데 현지인들이 다 여기에 와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과하게 먹은 터라 새로운 과일 몇 개와 코코넛스무디로 저녁을 해결했다.


여행 이틀 째이지만 이번 여행은 나에게 대충 살 용기를 준다. 하루쯤 안 씻으면 어떻고 계획에 어긋나면 어떻고 남들이 다 가고 먹는 걸 안 하면 어떤가. 시작과 과정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는 없다. 그저 흐름에 맡기고 수용하는 여행이다. 그런 삶의 자세를 짧은 여행기간 동안 실천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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