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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이상한 태국여행 3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

by Gray Monkey

이 여행은 짧은 순간 지나가는 느낌들을 포착하는 그런 여행.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오늘은 에라완 폭포에 가서 구경하고 치앙마이로 가는 야간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아유타야를 가려면 1시에 서둘러 버스를 타야 하기에 과감히 포기하고 바로 치앙마이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아침 7시 30분, 에라완 폭포로 가는 로컬 버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버스는 8시에 출발했다. 덜컹거리는 오래된 구식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이 걸려 에라완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에라완 폭포 가는 버스

너무 맑지 않은 적당히 구름 낀 날씨라 더 좋았다. 아침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더 시골로 들어가 주변이 푸릇푸릇해지는 풍경을 보는 게 좋았다.

가끔씩 어떤 풍경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과거의 느낌이 불현듯 떠오른다. 보통은 냄새에 의해서 아주 오래 묻혀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몸은 에라완 국립공원으로 가고 있지만 기억은 친척들과 또 친구들과 양산 배내골로 놀러 가던 장면으로 가고 있었다.

보통은 조금 이국적이거나 아름다운 장면이 눈앞에 나타나면 카메라를 들어 찍기 시작한다. 새로운 장면을 저장하고 또 다른 새로운 장면에서 잠깐 감탄하고 또 사진을 찍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폭포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나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가 민망하고 빨리빨리 찍고 빠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독사진은 제대로 찍지 못했다.


에라완 폭포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있는데 닥터피쉬인 듯 사람들의 각질을 뜯어먹으러 온다. 에메랄드 빛 계곡에서 수영하고, 물고기들을 스치며 수영한 경험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순간의 기쁨은 높을 뿐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진 못한다.

레벨 7단계까지 트레킹을 하면서 폭포를 구경하며 수영하고 내려오자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내향형 인간인 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편하지 않다. 사람들을 피해 깐짜나부리로 돌아가기 전까지 작은 테이블에 앉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폭포에서 수영하는 건 내 예상 그대로였고 자연 풍경이 멋있긴 했지만 이미 그런 것들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감흥이 크게 일진 않았다.


이동만으로도 만족하는 여행. 왕복 3시간 30분 정도의 버스 여정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나지만 외부에서 오는 자극 그 자체는 크게 울림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차에 타 지나가는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사소하게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떤 느낌들을 포착한다. 나는 그것이 나의 내면의 소리라고 믿는다.


무언가에 대한 큰 기대 없이 무심하게 대상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피어나는 것 같다. 에라완 폭포라는 뚜렷한 목적지보다 거기로 가는 지루한 여정에서 든 생각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을 발견할 때 기쁨을 느끼고 그 내용을 기록해 둔다. 분명하고 명확한 무언가가 아니라 느낌으로 오는 그것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최대한 표현을 해두어야 나중에 기억할 수 있다.


그래서 기대하는 게 없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없고, 물 흘러가듯 나를 내맡길 때 예상밖의 무언가가 나타난다. 마치 내가 원했던 것처럼, 보상처럼 나타난다.


오늘의 보상은 까놈크록이다.

깐짜나부리에 있는 며칠 동안 계속 찾아 헤맸지만 보이지 않다가 그냥 포기하고 터미널로 향하는데, 바로 골목에서 짠! 하고 나타났다.

코코넛 풀빵 까놈크록

이거 이름이 뭐예요?

까놈크록!

와!


6개에 20바트. 치앙마이행 버스를 기다리며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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