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 트레킹
치앙마이에서 버스를 타고 더 북쪽인 치앙라이로 넘어왔다. 치앙라이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치앙라이에서 푸치파로 가서 푸치파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푸치파에 가게 될까?
치앙라이의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동네를 둘러본 뒤 일찍 잠에 들었다. 아고다에서 투어를 검색하다 보니 치앙라이에 여러 가지 투어가 있었다. 치앙라이의 국립공원을 통과해서 고산족 마을을 둘러보는 트레킹 투어와 치앙라이 내에 사원들과 박물관, 명소를 하루에 돌아보는 투어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픽업트럭을 타고 치앙라이의 도심을 벗어난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깐짜나부리 에라완 국립공원과는 다르게 사람이 거의 없었고 투어 가이드와 나 단둘이 등산을 하게 되었다.
대나무 숲을 넘어 고산족 마을인 라후 빌리지로 걸어갔다. 이 여정은 특히 재밌었는데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야생의 숲을 탐방하며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을 많이 만났다. 레몬그라스와 바질 같은 야생 허브와 야생 과일들... 지천에 널려있는 식물들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활용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라후족 마을로 넘어와 간단히 차를 마시고 다른 데서 합류한 투어 여행객과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대나무로 만든다. 대나무 젓가락, 숟가락, 컵, 그릇, 찜통 등 슥슥 대나무를 잘라서 아주 능숙하게 만들어주는데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야생 바나나는 쫀득하고 파인애플은 아삭한 식감이 독특했다. 베지테리언이라고 하니 따로 누들수프를 끓여줘서 맛있게 먹었다.
가이드님이 코로나로 거리 두기를 할 때 이 마을에서 몇 달간 지냈다고 했다. 물론 모든 게 자급자족은 아니지만 풍족한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들로 직접 만들어 생활하는 삶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에서 전기와 물을 끌어다 쓰지 않고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삶. 먹은 것을 그대로 자연으로 내보내고 또다시 얻는 순환적인 삶. 소로의 월든 호수와 숲을 동경하는 내가 꿈꾸는 삶이었다.
‘아부이자’ 한 마디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가요’를 표현할 수 있다. 선한 인상의 라후족 마을 사람들과 헤어지고 또 다른 숲을 지나게 되었다.
바나나나무 숲과 대나무 숲을 지나고 여러 가지 식물과 열매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금방 아카족 마을에 도착했다. 이 투어를 하는 한국인들은 별로 없는지 가이드님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인들을 본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에서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아카족 마을을 잠시 둘러보고 폭포를 구경한 뒤 차밭을 지나오면 투어는 끝이 난다. 숲길을 걸으니 신발은 새카매지고 옷에는 흙이 곳곳 묻어있었다. 이렇게 흙 묻은 채로 돌아다닌 게 얼마만인지. 흙을 털어낼 필요도 없이 그냥 대충, 있는 그대로 다니는 태국 사람들이 참 편해 보였다.
숲에 있는 나무로 장난감을 만들며 놀고, 자연이 주는 걸 먹고, 필요한 걸 직접 구하고 만들어 가는 생활이 참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욕심내서 과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고 주어진 걸 가지고 만족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현실에서 내 방식으로 그런 삶을 꾸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먹기 위해 만들었던 대나무 수저와 컵, 그릇은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가져왔다. 나의 유일한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