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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이상한 태국여행 6

마음속 울림을 발견하는 시간

by Gray Monkey

치앙라이 셋째 날. 아침 일찍 명소 투어를 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영국에서 온 커플과 함께 3인이서 투어를 하게 되었다. 관광 코스는 백색사원(왓롱쿤)-청색사원(왓렁스아뗀)-반담 박물관 블랙하우스-카렌족 롱넥빌리지-점심 식사-추이퐁 차 농장-골든 트라이앵글-아편 박물관으로, 총 7곳의 명소를 둘러보는 여정이다.


파란색의 사원은 어떤 곳일까 궁금하여 청색사원을 둘러보고 싶었고, 태국,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인 골든트라이앵글에 가보고 싶었다. 다른 곳들은 굳이 방문하려던 계획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색다른 자극이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장엄한 흰색과 은빛으로 빛나는 백색사원에는 아침부터 관광객들이 많았다. 서양인, 중국인, 한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서양인들에게는 이 불교 사원이 무척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사원이 그저 하나의 사진 찍는 공간으로 남겨진 것이 좀 안타까웠다. 물론 사원 내에 아트 갤러리와 박물관도 있었지만 너무 관광화된 장소는 오히려 그 진가를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다.

청색사원은 좀 더 특이했다. 우리나라의 절에서는 보통 만날 수 없는 색이라 느껴져서 이국적이고 신선했다. 전통 있는 오래된 사원이 아니라 2005년쯤에 지어졌다고 한다. 마음을 닦고 부처의 진리를 깨닫는 사원의 모습이 이렇게 화려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화려함에 시선을 뺏겨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존재를 깨닫는 순간은 더디게 온다. 여러 곳의 관광 명소를 투어 하는 내내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듣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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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사원의 하이라이트는 사원 옆에 상점에서 파는 코코넛쉘 아이스크림이다.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스티키라이스, 땅콩의 조화가 훌륭했다.


반담 박물관의 외형과 작품들은 백색사원과는 달리 어둡고 진중했다. 인간의 내면의 본질은 어두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듯이, 인간의 근원은 어두움이며 그 어두움을 받아들이는데서부터 각자의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고통과 행복, 어둠과 밝음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눌 필요도 없이 그 두 가지는 나뉘지 않는 한 쌍이며 그것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때 인간에게는 변화가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도 마냥 좋고 나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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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담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카렌족과 다른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는 롱넥 빌리지로 향했다. 입장료는 300바트. 카렌족 마을이 관광단지로 상업화되어 (그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팁박스에 팁을 주는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다기에 굳이 더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영국 커플이 마을을 방문하는 동안 입구 카페에 앉아서 글을 썼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북쪽 매쌀롱 지역의 추이퐁 차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예뻐서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이것도 여행이지만, 정말 놀러 가는 느낌. 걱정과 현실을 잊고 휴가를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 울림은 길 위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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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한 잔 마시고 하이라이트 장소인 태국-라오스-미얀마 국경지대로 향했다. 하루에 7곳을 둘러보고 점심까지 먹는 여정이라 그런지 각 장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30분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발원한 메콩 강이 세 나라를 인접하여 흐르고 있다. 강은 세 나라를 나누어 흐르지만 강 자체는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다른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통일 전망대에서 북한을 볼 수 있지만, 북한으로 이동할 수 없기에 고립된 섬나라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옆에 있는 영국인 커플도 그렇게 느낄까? 대륙에서 인접한 국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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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트라이앵글과 그 근처의 아편 박물관의 방문을 마치고 다시 치앙라이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탔다. 하루에 여러 곳을 찍먹 하듯 돌아다니는 건 체력이 좋아야 할 수 있다. 모든 걸 새롭게 바라보고 신기해할 수 있는 능력... 나에게는 오늘 하루가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늘 하루 내 마음에는 어떤 울림이 있었나 생각하며 시내로 돌아가는데, 가는 길에서 마주한 노을은 정말 아름답고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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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지고 나서도 은은하게 빛을 뿜어낸다. 해가 다 지고 시내로 돌아와도 어스름하게 남아있는 붉은빛. 결국은 지구가, 혹은 내가 움직이는 것일 뿐인데 해가 넘어가려는 모습을 담으려 애쓴다. 내일도 모레도 또 해가 뜨고 질 테지만 늘 이 순간은 소중하다. 인간은 착각 속에 살고 착각 속에서 울고 웃지만 그래서 매일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 '아, 내가 여기에 있구나'를 느낀다는 것.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를 한 편 쓸 수 있어서 기뻤다. 눈 돌아가는 바쁜 일정에도 내면에 집중하는 힘이 있다면 지나가는 시()의 언어를 붙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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