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먹고, 자고, 쓰고
호수가 있는 고즈넉한 작은 도시, 파야오에 왔다.
여행이 후반부로 가고 있다. '푸치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푸치파로 가는 방법을 계속 검색하다가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유튜브나 다른 블로그를 봐도 대중교통으로 가는 경우가 잘 없어서 보통은 차를 렌트하거나 오토바이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제 투어 가이드에게도 물어보니 차가 없으면 가기가 힘들 거라 했다. 푸치파에서 구름이 걸린 산자락과 멋진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기약해 두고 큰 호수가 있는 평온한 도시인 파야오로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의 후반부가 되니 뭘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파야오가 제격이었다. 숙소를 검색하다가 터미널 부근에 새로 지어진 숙소가 저렴하게 나와서 당장 3박을 결제했다. 이전 숙소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잤기에 평온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했고 그러기에 알맞은 숙소였다.
덜덜거리는 로컬버스를 타고 2시간을 넘게 달려 파야오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음에도 친절한 주인은 숙소를 안내해 주었고 덕분에 깨끗한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무엇을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지금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다시 숙소로 가서 씻고 누웠다. 이다음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편하게 느껴졌다. 관광지에 가면 의무감에서라도 어디든 둘러볼 때가 있는데 파야오는 그럴 관광지도 딱히 있지 않아서 숙소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몰이 되어갈 무렵 호숫가로 걸어갔다. 숙소에서는 15분 넘게 걸어가야 하지만 걸어가는 길이 새로워 즐거웠다. 작은 도시인지라 관광객도 없고 조금 이방인의 느낌이 들었지만 파야오의 사람들은 친절히 대해주었다.
밥 먹고, 쉬고, 산책하고 여유로운 첫날이 흘러갔다. 파야오의 느낌은 다른 도시보다 조용해서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았다. 치앙마이나 치앙라이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그것이 파야오의 첫인상이었지만 둘째 날 아침이 되니 분위기가 달랐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 시장 쪽으로 향하니 아침 일찍 상인들이 물건을 내놓고 팔고 있었다. 태국의 아침은 항상 분주한 느낌이 든다. 일찍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 노점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다들 일찍 하루를 시작하나 보다.
치앙마이의 마켓들, 치앙라이의 나이트 바자 같은 곳과는 다르게 외국인이 전혀 없고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장이었다. 아침으로 먹을 과일을 좀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조용한 밤과는 다르게 아침이 활기차서 나도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현지인의 일상으로 쑤욱 들어가 그들의 하루를 구경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편하다고 느껴졌다. 파야오의 사람들은 잘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관광지에서 영어를 쓰면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느낌과는 달랐다. 여기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하는 일도 없고 사람들이 몰리거나 붐비는 일도 없었다. 그저 도시와 자연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과일을 사 오는 나를 보았던지 숙소에 접시와 칼, 수저를 마련해 주었다.
파야오의 호숫가 근처에 금, 토에만 여는 야시장이 열렸다. 태국의 야시장들이 다 비슷하면서도 로컬 야시장만의 매력이 있다. 잔디밭에 앉아서 사온 저녁거리를 먹었다. 노을이 지면서 하늘의 색깔이 바뀐다. 어제도 보았던 풍경이지만 오늘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 나에게 태국여행은 마사지도, 쇼핑도, 맛집 탐방도 없다. 그저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을 사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걷기, 먹기, 쓰기, 잠자기를 실천할 뿐인 것이다.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다는 걸 발견하는 여행이 아닐까? 새로운 경험이지만 그 새로움 속에서 당연함을 발견하는 파야오 여행.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던 호수와 해가 지고도 붉은빛이 남아있는 하늘. 그 풍경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