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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12. 2021

큰 나인 우리로 더불어 사람답게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에서 배운다

한국인은 내가 작은 나인 저의 단계를 넘어서 큰 나인 우리의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나를 사람답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사람다움에 대한 꿈을 이루어가는 바탕과도 같다.


최근에 너무 감명깊에 읽은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159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고구려인의 기상과 우리주의

2016년 중국에 살게 되었을 때 읽었던 도올선생의 중국일기에 고구려인의 기상을 설명하는 글이 매우 묘했다. 알듯말듯 하면서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이상을 펼치라는 표현이 당췌 무엇인지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5년이 지난 오늘 전혀 다른 분이 쓴, 지식의 바탕도 너무 다른 책에서 그 말을 이해하게 만드는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큰 나인 우리의 단계 란 표현이다. 도올선생의 책은 다 읽고 친구를 준 탓에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국가나 영토의 범주 안에 우리를 가둘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감각적으로 큰 나가 무엇인지 알 듯하다.


10년도 더 지난 때이지만,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지식 공유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봉사자를 대하듯 했다. 나는 특별히 봉사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고, 스스로 좋아서 했다. 지금 해석해보면 나와 믿음이 같다면 나와 남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특징은 나뿐 아니라 당시 그리고 요즘도 비슷한 공유를 하는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작은 나가 아니라 큰 나인 우리가 있는 것이다.


사람다움에 대한 꿈

큰 나에 이어 등장하는 사람다움에 대한 꿈, 아름다운 말이다. 공교롭게 최근에 도올선생 유튜브 <노자> 강의를 듣는다. 거기에 인간(人间)을 풀이하면서,인간은 사람이 아니란 말씀을 한다. 사이 간 자가 나타내듯, 인간사이를 지칭하는 사회의 의미다. 나는 사람다움에 대한 꿈이란 표현을 들을 때, 저자의 생각을 벗어나서 두 가지를 연상했다.

하나는, 나답게 자유로워지는 것

두 번째는, 이웃 혹은 공동체와 어울림


닫힌 우리와 열린 우리

책 163쪽에 이상의 생각을 다듬어주는 부연이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밖에 있는 것까지 하나의 모두로서 함께 어울려 있음을 깨달아야 모든 것을 임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닫힌 우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열린 우리로서 함께 어울리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닫힌 우리주의에 갇혀버리게 되면, 그것이 나의 모두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게 된다.

몇 주간 함께 일하는 분 중에서 닫힌 우리에 머무는 듯한 분때문에 마음을 쓴 일이 떠오른다. 내가 그를 바꿀 수는 없지만, 다소 고통스러워도 나 자신은 그를 열린 우리에 둘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지 마음을 먹어본다.


마음에 쏙 드는 우리주의라는 표현

스무살 무렵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선후배를 강요하고, 집단문화를 강요하는 주변인들에게 개인주의를 선포했다. 당시 X세대란 표현과 함께 자주 회자되던 말을 인용해서 나 자신의 행동양식을 강제로 남들과 맞추지 않겠다고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나는 내 것을 공유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다. 내 생각을 감추는 일도 불편해한다. 그러한 습성이 어쩌면 우리말에 흔적이 드러난 바탕에서 우러난 것일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최봉영 선생님 책 덕분이다. 지인은 배운게 있으니 그 분께 술 사들고 가라는데, 술 드시는 것을 좋아하실런지... ;)


서구의 개인주의나 중국의 집단주의를 끌어다가 한국문화를 풀어내려고 하면, 맞지 않는 점이 매우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개인주의나 집단주의를 끌어다가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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