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일상의 기록 11편
아래 사진은 작년부터 제주 생활을 하며 연례 행사로 하는 잔디깍기 장면이다. 연례 행사인지라 올해 두 번째다.
지난 해는 건성으로 했고, 올해는 다양한 이유로 정성을 다했더니 작은 고통이 찾아 왔다. 고통의 흔적인 상처를 보면 생각한 내용을 글로 옮긴다.
처음에는 장갑도 끼지 않고 잔디를 깍았다. 그랬더니 왼쪽 손바닥에서 힘이 들어가는 부위에 물집이 생겨 살갖이 벗겨졌다. 밴드를 붙이고 다시 돌아오는 사이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짜증이 나려고 하는 순간 이를 다스리는 내면도 느껴졌다. 도구 손잡이 부분에 쿠션(?)이 있다는 사실도 다시 봤다. 하지만, 힘을 주려고 주로 쿠션 바깥을 잡았다. '손잡이 어느 부분이 옳을까?'에 잠시 빠져 있다가 보통은 목장갑부터 끼는 사람들의 습관이 떠올랐다. 힘쓰는 일을 거의 안하는 나의 행동 양식과 함께 목장갑이 집에 있어도 끼지 않은 나의 과오로 생각을 좁혔다.
그래서, 밴드를 붙인 후에 목장갑을 꼈다. 나중에 오른손도 물집이 생겼고,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목장갑을 2개 끼라고 한다. 나는 깨달았다.
오호 2개도 낄 수 있구나!
다혈질인 나는 (스스로 잘못해놓고서도) 짜증을 내고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불통을 튀는 순간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다시 일을 하면서 목장갑을 끼는 일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깨달았다.
내 관심사는 손과 장갑과 잔디깍기의 손잡이 부분에서 잔디의 날부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힘을 주면서 내가 느끼는 바와 잘리는 잡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경험하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게 되었다.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소 과장하면 평범한 축구 선수의 드리블에서 메시의 잔발 드리블로 점프한 듯한 사고의 비약이다.
나는 배움을 뜻하는 공부라는 한자가 힘을 써서 익히는 일이란 사실을 2016년 중국에 가서야 알게 된 아이러니를 떠올렸다. 심지어 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는데 공부의 뜻도 몰랐던 세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