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훈련 No. 10
거의 스무날만에 묻따풀을 이어간다.
어느날 최봉영선생님과 통화를 하는 가운데 물어보셨다. 내가 알리는 없고, 한참 설명하신 내용이 알고보니 기고하는 내용을 다룬 말씀이었다.
우연하게 페북에서 본 글과 아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글을 보며, 코로나 창궐 국면에 서방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공감이 쉽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최봉영선생님이 두 달 전에 보내주신 이미지를 찾아냈다. 유아기에 인간은 나만 인식한다. 문제는 유아기를 지나 법적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설사 다른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자신은 해내는 <라도> 혹은 <만이라도> 단계가 있다. 누군가는 그런 노력을 점수(漸修)라고 불렀다. 나는 그런 상태와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함께성이라는 말을 올해 처음 들었다. 최봉영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이 매력적인 말이 무슨 뜻인지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보내주셨다. 다만, 내가 이걸 다시 열어서 바라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달이 훌쩍 넘었다. :)
아름이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여기서는 다루지 말자. 나만 생각하는 <나>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쪽을 이루는 <나>가 있다. 이정도는 독자들도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공사구분' 이라는 낡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함께성과 따로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듯하다. 마치 음양이 공존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