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훈련 No. 9
최봉영선생님과 통화 중에 일부를 빠르게 메모했다. 한 시간 남짓 통화 내용은 한 페이지에 담기에 터무니없이 많은 내용이다. 앞서도 분명 기록을 했지만, 나중에 복기하며 묻따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통화로 이어지는 대화 속 소통을 즐기는데 집중했다. 다만, 스스로 묻따풀로 소화할 수준의 내용만 기록하기로 했기에 대화 초반 6분 정도의 내용만 담았다.
통화 후에 메모를 다시 살펴봤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펼쳐진 내용으로 일을 차리는 틀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먼저 최봉영선생님의 사람 설명을 다뤄보자. 사람은 사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간단하게 '살아온 나, 살아가는 나 그리고 살아갈 나'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을 임자로 다루면 줏대를 세울 수 있다. 임자가 자아 인식이기도 하니 영어로 self라 할 수 있다. 이때, 임자가 갖는 정체성(identity)이 바로 우리말 줏대라 할 수 있다. 흔히 '계획이 있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줏대이기도 하다.
또한, 흔히 '사람을 알아보다'라고 말할 때도 줏대가 드러난다. 이는 임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보고 줏대를 인식할 때 하는 말이다.
우리말은 일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설명을 처음 들었다. 아쉽게도 그 배경을 최봉영 선생님 대신 설명할 역량은 없다. 그리고, 일단 이 글은 일을 차리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낱낱이 하는 일을 다룰 때 쓰이는 기준이 바로 잣대이다.
바로 떠오르는 잣대는 지표이다. <린 분석>을 읽고 있는 탓이다. 그리고, 근래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잣대로 여겨질 표현들이 찾다가 내가 잣대와 줏대를 혼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이전 글에서 '양병설 이전에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말이나 같은 글에 쓰인 '컴퓨팅적 사고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일반화하는 과정'이란 표현을 잣대 예시로 찾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잣대가 아니라 줏대가 아닌가!
수포자이지만 '미분과 적분'의 이분법 구분은 명확히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미분과 적분'에 대응시킬 수 있을 법한 두 가지 다른 시각도 평소 활용하는 듯하다. 하루 중에 쓰는 시간을 집중하기 위해 OKR가 칸반을 접목하여 쓰고 있다. 이는 장기적 목표에 부합하는 잣대를 두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은 오늘 하루 시간을 쓰는 데 있어 몰입을 하거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마치 적분이 떠오르는 시각은) 방향성을 설정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종종 내가 스스로에 질문하는 종류의 것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나에게 생긴 믿음이 하나 있다. 결과물은 만든 사람을 닮는다. 동시에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든 이도 바뀐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설프나마 욕망을 키워드로 묻따풀 행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 가운데 나에게서 시작하는 욕망이 결국 내 삶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란 사실을 점점 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은 일을 통해서 삶의 많은 부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느낀다.
이때 줏대와 잣대를 잘 세우고 사용할 수 있다면, 내 삶을 더 잘 차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