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대화하기 No.30
지난 글에 이어 베스트셀러 <눈 떠보니 선진국> 3부 AI의 시대 내용 중에 관심이 가는 부분에 대한 생각을 쓴다.
아래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문제 -'왜'와 '무엇'이는 없는데 '어떻게'만 튀어나오는-는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중략> 지금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계획서의 상당 부분은 사실은 표지만 바꾼 U시티 계획입니다. 스마트시티에 대해서도 최소한 정부와 공공기관이 함께 쓸 수 있는 정의를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책에 나오는 정의하는 사회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정의는 쉽지 않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라면 정의하는 행위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관료적인 분들이 느끼기에는 '사서 문제를 만드는 일'로 보이기도 한다. 무언가 베끼던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정의를 굳이 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가 선진국에 들어선 이상 비효율적으로 느껴져도 정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인생 책이기도 한 <대체 뭐가 문제야>는 꼭 권할만한 교양이다.
두 번째로, 정부부서 프로젝트가 등장하자 지인 제안으로 입찰했던 정부 사업에서 형식적인 요건을 중시하던 느낌을 받았던 일이 기억난다. 안타깝게도 예상했던 바다. 심사위원 두 분 중에 한 사람은 앵무새처럼 형식적 완결성에 대해 지적했다. 자신의 정년보장이 가장 중요한 교수님들이 주로 보여주는 행동 패턴이라 그러려니 했고, 도리어 젊어 보이는 한 분이 합리적인 질문을 해서 그 짧은 교감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2008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대통령혁신자문기구에 속한 과장님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곳까지 찾아와 '프레임워크가 뭐냐?'고 물었다. 지인이었던 모기업 임원의 친구분이라는데 한참 연배가 어린 나를 찾아와 전문 지식을 물으셔서 놀라웠다. 내가 익히 알던 공무원(?)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다르지 않은가?
내 대답에 신뢰감을 느끼셨던지 어떤 사업의 RFP(제안요청서)를 보여주셨다. 바로 내일 그에 대해 의견을 내야 하는데 자신의 의견이 합리적인지 물으셨다. RFP는 수행을 위해 영업하는 회사가 내용을 써준 것이 역력하게 보이는 엉터리였지만, 당시만 해도 프레임워크란 지식이 생소하고 RFP 내용이 방대해 현혹되기 쉬웠다. 나는 이렇게 말했고, 과장님은 내 조언에 준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셨다.
저는 정부가 왜 코드를 직접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정부의 프레임워크처럼 용어를 통일하고, 필요한 요건에 대해 일관성있게 기술하게 하여 민간업체가 경쟁하고 중복 투자를 하지 않도록 기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정권이 바뀌고, 정통부가 사라지면서 애초의 RFP는 사업 모양만 바뀐 형태로 현실화 되어 아쉬웠다. 과장님은 지식경제부로 소속이 바뀐 담당자분을 소개해주셨지만, 그 분은 자기가 이 일을 맡을지 어떨지 모른다고 하셔서 아쉽게도 더 이상 자문하는 일도 불가능해졌던 아쉬운 일화가 있다.
그 일과 <눈 떠보니 선진국> 내용은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아래 내용을 읽으면 그때 나의 바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도대체 시티, 즉 생태계로서의 도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포함된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이 바닥(?)에 있으면 뻔히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모두 어설프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상태로 관망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5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정책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전세계에서 가장 큰 3D프린터 구매자가 대한민국 정부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입니다.
스타트업을 만들고 나서 두 명의 지인이 나에게 '데이터 바우처 사업'을 권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도 않고 말이다. 짐작하건대 우리 회사를 IT전문회사로 보고 그쪽에 정부 자금이 많으니 제안해보라는 뜻일 것이다.
돈이 필요하다고, 일을 정하면 비전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왜 스타트업을 하는가? 지인들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 그럴 수 있지만, 문제 정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시도한 것이다. 문제 정의는 어떻게 하느냐? 박태웅 의장님의 친절한 예시가 바로 나온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기존의 질서를 깨트리거나 심하게 변형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을 때 사회는 어떻게 그 기술과 화해를 할 수 있느냐, 법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해답은 어디에 있고, 그 해답을 찾는 사회적 논의구조는 어떻게 마련되어야 하느냐, 기존의 이해관계가 부를 불가피한 저항은 어떻게 해소해나갈 수 있느냐.
정부뿐 아니라 대기업과 일하다 보면 두 가지 병폐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전시행정식 기획
'신문에 그거 나왔던데' 기획
변화한 세상에 대해 인식이 없는 분들이 좋은 학교를 따지는 고시문화와 연공서열 문화 탓에 결정권자의 자리에 앉은 탓이다.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2016년이던가? 알파고가 대중들에게 AI 홍보대사(?)로 나타난 이후 AI는 그야말로 광풍이다.
AI로 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거나, 알고리듬으로 했기 때문에 객관적이라는 말은, 앞서 애플과 아마존의 사례에서 보듯 완전히 틀린 말이다. <중략> 우리는 인공지능을 아직 잘 모른다. 함께 익혀나가고 있다는 것, 잠재력이 큰 만큼이나 숨겨진 위험도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통의 규범을 함께 신중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산업발전 초기에는 항상 미신이 존재했다. 이는 점차 개선되리라 믿는다. 진짜 문제는 다음 문장에 담겨 있다. IT지식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 그건 개발자가 할 일이지라는 생각으로 치부하기엔 소프트웨어의 파급효과는 너무나도 크다. 멀리 볼 것 없이 클릭 장사의 폐해속에 망가지는 언론환경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무지와 무능력이 큰 작용을 했다.
소프트웨어는 모든 산업부문에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를 자기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 소프트웨어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최근에 미력이나마 틈틈이 이러한 변화의 양상에 대해 설명하려는 시도를 디지털 전환 선행 연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아래 내용을 보니 박근혜정부때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전개된 SW교육 정책이 떠올랐다.
프로그래밍 교육은 독립된 과목이 아니다. 전 과목에 적용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중략> 교사와 학생은 학습 목표를 공유하여 함께 배우고 익히는 공동체이며, 학교는 그들의 교육 커뮤니티 장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당시 나는 교과서 작성 지침에 차질이 생긴 부분에 구원투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정말 급하게 엉터리로 추진하는 일에 기가 차서 정반대로 학부모 교육을 시도했다. 다만, 교육자도 아니었고, 일부러 일을 쉬며 이후를 준비하던 터라 동네분들을 대상으로 아주 작게 설명회를 하는 정도였다. (언젠가 우리회사가 기반이 잡히면 다시 그런 일을 할지 모르겠다.)
학창시절 나는 수포자였지만 이내 어머니가 키워주신 창의력을 바탕으로 일터에서 놀이삼이 일을 했다.
컴퓨팅적 사고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일반화하는 과정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단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대체로 '방치'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새로운 것을 고안하고 구조를 바꿔보는 사고훈련으로 시간을 때우던 나는 학교 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정해진 틀에 가두고 암기를 강요하는 곳은 나와 맞지 않았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을 하기에 대학에 가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학교가 가르쳐 준 것은 거의 없었다.
이런 내 경험은 SW교육마저 똑같이 획일적으로 가르치려는 교육부에 소극적이나마 저항하게 했다. 이제는 아이가 생겨 육아를 한다. 창의력이란 정해진 틀 안에서 여지와 자유를 주었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질문을 못하게 하던 학창시절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질문을 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 컴퓨팅적 사고의 반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