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Oct 21. 2021

저는 의지를 믿지 않습니다

연한 일상의 기록 6편

얼마전에도 인용했던 신수정 부사장님  올라왔다.  줄을   놀랍게도 이미지 스캔처럼 단번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듯했다. 그러한 반가움을 한참 느낀 후에 확인차(?) 글을 읽었다. 예상과  차이가 없는 글이다.


저는 의지를 믿지 않습니다

평소 친힌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를 믿지 않는 탓에 '뱉은 말'로 나를 가두고, '모임'으로 나를 가둬왔다. 그리고, TDD 와 XP라는 정교한 방법을 익혀서 아기발걸음이라는 ‘실천하고 눈덩이 굴리듯이 지속하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해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기발걸음이란 표현은 XP 책에 있는 내용이고, 내 방식대로 익혀왔다.


아무튼 의지를 안 믿으면 무엇을 믿냐? 그렇게 물으면, 행동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애가 걸음마를 배울 때, 눈만 뜨면 손을 잡아달라고 하더니 금새 늘어나는 실력(?)을 보고, (그제서야) 실행의 놀라운 힘을 깨우쳤다.

그 깨달음을 메시의 잔발 드리블과 연결하여 낭비없이 일을 전개해 가는 방법으로 아기발걸음을 확장했다. 거기에 더해서 제대로 하려는 욕심을 다스리고, 대신에 잽을 한대 맞고 시작해도 좋다는 용기를 훈련했다. 그랬더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고 당연스러운 시행착오로 여겨 배움이 빨라지는 길도 익혔다. 이들을 합쳐서 나는 아기발걸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의 아기발걸음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당장 작게 시작하고, 지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만드는 행위

지속하는 동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매사에 에너지 넘치는 아기처럼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기가 본성처럼 익히는 아기발걸음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에겐 그저 비유일 뿐 그런 대상이 매일 샘솟지 않을 수 있다. 도리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많고, 하던 일이 금새 지루해지거나 벽에 부딪히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전 글에 소개한 김영민교수님의 귀찮음과 세계대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행동할 동기가 전혀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영민교수님이 인용한 연암 박지원의 해법을 들어보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천하는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릇이다. 무엇을 가지고 그 그릇을 유지할 것인가? ‘이름’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이름을 유도할 것인가? 바로 ‘욕심’이다(天下者, 枵然大器也. 何以持之? 曰名. 然則何以導名? 曰欲).” 사람들이 귀찮은 나머지 아무것도 안 하다가 멸종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사람들의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뭔가 해보고 싶은 욕망. 우리는 흔히 욕망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 욕망이 없다면 이 세계는 텅 비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릇은 해체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다가 멸종되고 말 것이다. 욕심이 있어야 인생이 있고, 인생이 있어야 욕심이 있다.

박지원의 욕심은 요즘 내가 묻따풀하는 욕망과 같은 말 아닌가?


욕망의 실현이 나를 만든다

여기에 이르니 두 개의 도식이 떠오른다. 하나는 최봉영선생님이 그리신 말과 문명 세계와 자연세계 벤다이어그램이다. 임자의 생각이 욕망으로 펼쳐지고 체제와 세계를 만들어가는 현상을 도식화 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문명 세계를 만드는 중심에 있다.

두 번째 도식은 내가 그린 것이다. 점이 만드는 선분과 그 이력이다. 만남을 특정 기능이나 목적에 따라 추상적으로 묘사해본 행위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이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 행동의 목적을 뽑아보면 인생에 걸쳐 선분과 같은 발자취를 걸어온 듯해서 그렸다. 아마 이 그림은 앞서 설명한 나의 아기발걸음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