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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15. 2021

욕망을 둘러싼 세계 - 욕망 탐구IV

묻따풀 훈련 No. 4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최봉영선생님의 페이스북 글을 기준으로 묻고 따지기를 해봅니다.


말과 생각, 문명과 자연

우선 일목요연한 그림에 감탄부터 한다. 정보의 압축과 일관성있게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감상 끝!)

묻고 따지기 시작. 최선생님 글을 읽기 전에 도식화 한 그림을 기준으로 묻고 따져보자. 말과 생각이 욕망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이전 글에서 이미 다룬 도식과 유사하다. 이때도 주체인 임자 표현을 썼다. (더불어, 글 몇편만에 이미 임자란 말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한다.)


도덕 규범은 반드시 존재하나?

욕망이 반드시 도덕 규범을 관통할까? 만일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리라.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그래서 그림에서는 이후에 자연세계만 존재하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사회체제에 대해 도덕 규범의 잣대 없이 욕망을 표출하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도덕규범의 잣대를 임자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덕규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은 집단적인 구조를 표현했다고 보면 예외 상황도 모두 포용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임자와 자연세계는 이론적으로는 문명과 무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임자의 줏대와 자연의 잣대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가 하나의 벡터를 이루는 선분을 문명 세계로 묘사한 부분도 명쾌하다. 줏대와 잣대의 차이에 대해서는 글 말미에 따져보기로 하고, 다시 최선생님 글로 돌아가서 묻고 따져본다.


문명의 주체인 임자

이전에 나는 만물의 영장이란 표현에 거부감이 있다. 아래 글을 보면서 웬일인지 그 표현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함께 더불어 어울려서 살아가는 임자이다. 사람들은 말로써 생각을 펼치며, 함께 더불어 어울려서 살아가는 임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마치 자연세계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말처럼 느껴져 너무나도 무지하고 오만한 태도의 집약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신을 활용해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 하려는 시도와 연관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긴 지구의 역사에서 문명세계만 놓고 봤을 때는 그렇게 말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노골적인 말은 문명세계의 주체(임자)로 대체할 수 있을 듯하다.


말의 힘을 강화하는 글

도식에서는 글을 별도로 포함하지 않고, 말의 범주에 넣었다.

사람들은 말로써 생각을 펼쳐서, 깊고 넓게 알아보게 된 것을 지식과 기술로써 함께 쌓아 나간다. 사람들은 함께 쌓아 온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온갖 것을 바라거나 이루는 일로 나아간다.

하지만, 생각을 펼치고 함께 쌓아가기 위해서는 말이 글 형태로 전파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이니 분서갱유니 등의 사례를 들 필요가 있으려나? 이보다는 필자가 직업 생활에서 배운 노하우를 퍼뜨릴 목적으로 연재하는 글 중에서 개발 팀에 민주적 소통 절차 수립하기가 있는데, 지속적으로 IT시스템을 생생하게 유지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데 그 해법 가운데 기록과 소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에 쓴 글이다.


사실 위의 인용문을 그대로 개발 팀에 민주적 소통 절차 수립하기에 적용할 수 있다. 안영회는 말로써 생각을 펼쳐서, 깊고 넓게 알아보게 된 내용을 글로 기록하여 함께 쌓아 나가는 시도를 한다. 이를 통해 안영회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은 함께 쌓아 온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각자 혹은 함께 바라거나 이루는 일로 나아간다.


문명 구축의 주춧돌인 말

개인적인 경험상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받은 충격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잊고  말의 엄청난  다시 확인한다.

사람들이 말로써 자연이라는 터전 위에 저들 나름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자취와  보람을, 하나로 싸잡아서 문명이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터전 위에 문명의 임자로서 자리하는 것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쓰는 말의 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들이 온갖 것을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바탕이면서,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터전 위에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가는 힘이면서, 사람들이 온갖 것을 헤아려 나가는 잣대로서, 나름의 세상을 세워 나가는 줏대이자 구실이다.  


줏대와 잣대

평소 자주 쓰지 않던 말이라 구글링을 했다. 국립국어원 줏대 설명은 이렇다.

'줏대'는 '주요하거나 기본이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인 명사 '주'와 '초본 식물의 줄기/마음 씀씀이나 의지'를 의미하는 명사 '대'가 결합한 합성어로, 그 발음이 [주때/줃때]이므로 사이시옷을 받쳐 표기하는 것입니다.

설명에 따르면, 한자 와 대의 합성어로 보여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그렇다. 수레바퀴 끝의 휘갑쇠를 뜻하는 말도 줏대인데, 이들 둘이 어떤 연관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편, 잣대는 자로 쓰이는 나무 막대기를 이르는 말로 잣대를 자주 쓰지 않는 요즘은 아래 용법이 우세할 듯하다.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의거하는 기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검색 전에는 비슷한 말처럼 느껴졌는데, 검색하며 자연스럽게 묻고 따져보니 줏대와 잣대 차이를 자연스럽게 발견했다. 줏대는 '있냐 없냐'를 따져 물을 때 필요한 말이다. 다시 말해 결과가 yes or no (혹은 그 응용) 로 주어진다. 반면에 잣대는 척도니까 비교가 가능하고, 상대적인 값이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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