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대화하기 No.28
애초에 이 글은 박태웅의장님의 영감 넘치는 책 <눈 떠보니 선진국> 독후감으로 시작했는데, 결론은 1장 내용을 소재로 내 이야기 하는 꼴이 되었다. 혼자 보면 되는 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혹여라도 독서법으로서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 직업 생활에 힌트를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그대로 발행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국가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면서 드러난 부분이다. 우리가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직전인 것이다. 막연히 선진국을 열망할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저 '잘 살아보세~' 하며 묻지마로 달려왔을테지
언제나 베낄 것이 있었고, 선진국의 앞선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지문은 단지 '어떻게'뿐이었다. 정답은 늘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왜'라고 물어본 적없이 수십 년을 '어떻게'를 풀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도달해보면 내가 기대했던 삶이 아니다. 왜냐? 처음 왔으니 제대로 기대했을리가 없지. 상상, 공상, 허상 중에 하나일 수 있다. 그걸 실상으로 만들려면 지금까지 하지 않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읽는데 어쩌면 나는 정의하는 사회라는 글을 읽을 준비를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게는 중국에 살던 시절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갔던 대형서점 매대에서 집어들어 읽은 책 <축적의 시간>이 그 증거다. 일류대 교수님들이 쓴 일종의 두꺼운 반성문(?)인데, 나는 내가 독학으로 고군분투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는 구절이다.
정부에서 내놓는 자료도 자신이 말하는 '원격의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어떻게' 하겠다 얘기를 나열한다. 원격진료와 관련한 논의가 겉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IT컨설턴트로 십년 이상 활동했다. 국방, 발전, 회계, 보험, 신용평가, 유통, 조선, 증권 등 늘 새로운 일을 했다. 그래서, 모르는 일을 빠르게 습득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구원해준 도구 중에 하나는 사전 정확히 말하면 위키피디아다.
말과 이름에는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단어 사전이 아니라 위키피디아를 보면 친절하게 기원과 다양한 산업의 쓰임새까지 보여준다. 유일한 단점은 영문이란 점이다. 영문 읽기만 극복하면 아주 빠르게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말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혹은 현실에 구현된 대상이 어떤 상상이나 개념에서 출발할 것인지 기원을 알려는 사람만 찾는다. 당장의 납기에 끌려 빨리 결과를 내려는 태도로는 위키피디아를 보는 인내를 갖출 수 없다.
우와~ 감탄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미션을 받은(?) 기분이다.
백서에 앞서 녹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녹서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녹서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제안이다. <중략> 녹서를 통하여 질문을 던졌으니, 이제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담은 백서를 발간해야 할 차례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대학원 다닐 때, 마틴 파울러의 사이트를 번역하면서 한국의 마틴 파울러를 꿈꿨던 시절과 DDD 샘플을 만들려다가 한발 물러섰던 때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내가 배우고 느끼고 도전하고 삶에서 구현하는 사항에 대해서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단순히 나의 일기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이 재현가능한 일, 그래서 그들이 꿈을 이루는데 일말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남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내가 용기를 내서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배운 바를 공유하여,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다워지면 좋겠다. 암튼,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면 분야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범주로 녹서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선진국은 먼저(先) 나아가는(進) 나라(国)라는 의미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는 상태, 베낄 선례가 점점 줄어들 때 선진국이 된다.
90년 후반 오로지 영문으로 된 책과 서양사람들이 짠 소스코드를 보면서 독학으로 소프트웨어 쓰임새를 구현하는 일을 배웠다. (나에게 직접 모범을 보여준 사람으로) 선배는 없었다. 선배란 사람들은 그 일(프로그래머) 오래 못하니 영어 공부나 해서 은행 전산실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에서 만난 경력자들은 내가 말하는 단어들은 이론일 뿐이니 실무에서 구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허접하나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칙대로 상식대로 일을 해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바를 몸으로 배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란 사람은 반발심을 욕망의 땔감으로 쓰는 부류였다.
불과 며칠전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 (직업적인) 도움을 청하는 자리에서 적어도 20년 이상 안 써본 단어를 내놓았다.
OO님의 생업(生意)은 무엇입니까?
내가 중국에 갔을 때, 비즈니스를 뜻하는 중국말이 生意여서 놀란 일이 있다.
살아가는 의미가 바로 비즈니스란 말인가?
일을 사랑하는 나에게 일은 생활의 중요한 일부다. 그저 먹고사는 수단이 아니다. 그래서, 일로 만난 지인에게도 그들의 나와 지속적으로 일로 관계 맺으려면 결이 비슷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불쑥 생업이란 말을 꺼냈다.
다시 책 <눈 떠보니 선진국>의 1장으로 돌아가 보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이제 정의를 해야 한다. 우리도 스스로를 정의해야 한다. 일단, 내가 하는 일과 삶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려면, 욕망에 대한 이해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