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훈련 No. 1
<본과 보기 문화이론>에는 욕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글을 읽을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개념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다.
인간에게 욕망은 자유와 부자유의 두 모습, 즉 꿈으로서 마음껏 부풀려질 수 있는 자유로운 욕망과 실천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부자유한 욕망으로 다가온다.
불교도가 아님에도 해당 표현은 일반에서 자주 쓰이는 탓이리라. 말을 하면 욕구가 욕망이 되고, 그러면서 부풀려진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에서 다시 만난 고미숙선생님의 강의에서 욕망이라는 표현을 또 만났다. 최봉영선생님 구분에 따르면 욕구가 들어갈 자리에 욕망이란 표현을 쓴다. 욕구와 욕망의 쓰임에 대한 일반적 합의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욕구가 욕망이 되는 일은 욕구를 (말과) 생각으로 키워서 욕망으로 만든다고 해석하면 자연스럽다. 뭐가? 최근의 독서와 글쓰기 노력으로 인해 저자인 최봉영선생님과 통화할 기회가 생겼다. 통화하며 남긴 메모에 대입해서 고미숙선생님의 욕망의 용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한 것이다.
책을 읽은 흔적과 통화 후의 메모가 주는 생각꺼리를 소재로 마음만 먹었던 묻따풀 훈련이 시작해보자.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지인이 페북에 남긴 댓글이 떠오른다. 묻따풀의 장점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SNS가 삶의 일부인 디지털 기반 묻따풀의 장점은 사전에 정의하지 않은 다양한 지인들과 묻고 따지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야 말로 즐겁게 문장놀이를 하며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피드백을 통한 사고훈련은 되려 덤처럼 느껴진다.
지인의 댓글로 돌아가서 용례를 보면, 욕구는 필수적인 느낌이고 욕망은 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두 단어를 이루는 한자를 뽑아 함께 놓아보면 의미를 따지기에 좋다. (인수분해 응용이다. 수학 써보기에서 다뤄보자.) 프로젝션이라는 단어도 떠오르지만 글이 길어지니 (잘 설명할 자신도 없어) 생략한다. 지인의 문장이 주는 느낌과 한자가 일대일대응한다.
다시 반가운 고미숙선생님의 (유튜브) 메시지에 집중해보면, 그녀는 순환과 비움을 강조했다. 순환과 비움이 개인의 자유 획득에 중요하다는 주장인데, 욕망에서 자유롭기라고 문장놀이를 해보니 마음에 든다. :)
유튜브를 마저 봤다. 우리 몸과 정신을 이원화 하지 않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도올선생의 도올노자 유튜브에서 서양철학에 대한 반복적인 비판을 들으며 나에게도 세뇌된 부분이다. 특히 모든 것이 지속이다 에서 역사를 진보로 가는 한 방향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주장을 들으면서 E.H.Carr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대화란 점을 배운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역시 그가 주장한 '노자적 인간 만들기'는 고미숙선생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내 관심을 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올선생의 영상도 독자들께 추천하는데, 내가 감명깊에 들은 구절은 대강 이런 식이다.
윤석열 전총장의 무리한 역할 수행과 정치 행태를 도올선생이 검찰과 행정부가 대결하는 형국으로 본분을 벗어난 상황으로 규정하는 부분이 첫째로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나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정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로 일반화해서 보았다. 그런 관점에로 영상을 보니 생각이 머무는 지점은 대략 이랬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건강하게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