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대화하기 IV
본과 보기 문화이론 머리글을 읽었다. 최봉영 선생님의 책이다. 브런치에 썼던 큰 나인 우리로 더불어 사람답게 의 동기가 된 책,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은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펼쳐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학부 과정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조차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을 들여오거나 베낀 것이 대부분이고 <중략> 우리가 근대 학문을 시작한 지 이미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크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 석사 학위까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독학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2018년 눈에 띈 <축적의 시간>이란 책은 꽤나 흥미로웠다.
내용 자체는 산발적이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재밌다고 하긴 어려웠는데, 함께 반성하고픈 욕구를 자극했다. 그런데, 함께 반성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것인가?
26명의 저자가 있었지만, 필자가 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전혀 모르는 분들의 글이었다. 그럼에도 함께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산업으로 치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인지라 당면한 문제가 유사하고, 반성에 대해서는 마흔을 살아오면서 숙련된(?) 탓이리라. 일단, 그때 일을 여전히 마음에 담아 두고 살고 있다.
아무튼 축적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우리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겠다는 교수님들의 대열에 교수는 아니지만 나도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겠다.
축적의 시간이란 책을 보기 약 2년 전인 2016년 중국에서 살게 되면서 책 이름과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실수로 <도올의 중국 일기>를 사서 봤다. 그 덕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지식을 일부 흡수했는데, 고구려의 기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를 조금 선동했다. 이에 동하여 페이스북에 이렇게 쓴 일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 개인과 기업의 역량은 좁아터진 섬 같은 나라 안에서 다방면에서 미국의 틀 안에서 구축한 사회 시스템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념주의나 음모를 꾸미거나 대응하는 일로 시간을 소비할 일이 아니라, 남북교류로 섬같은 처지를 벗어나거나 해외로 나가야 할 때다.
이렇게 생겨난 도올 선생에 대한 호감이 유튜브가 도올 선생 중용 강의를 추천할 때 반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도올 선생의 <노자가 옳았다>를 학교 다닐 때보다 그 어떤 과목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는 중이라 최봉영 선생님의 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으리라. 다시 본과 보기 문화이론 머리글 문장을 인용한다.
스승의 날을 맞으면 으레 별스럽지도 않은 눈앞의 스승에게 아첨을 부리고 법석을 떨지만, 정작 교과서를 채우고 있는 위대한 스승들의 고마움에는 눈을 감는다. 이러니 위대한 스승들을 본받아 개념을 다듬고 이론을 만드는 일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는 이들이 나오기 어렵다.
우와~ 이 얼마나 우아한 통찰인가! 뒤이어 나오는 설명은 중국에서 읽은 도올 선생의 최근 책들의 근간에 깔린 생각과 대동소이했다. 나에게 있어 도올 선생은 노자를 해설해주는 스승이기도 하지만, 더 큰 나인 우리의 단계를 감각하게 해 준 분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우리말과 정서로 학문하는 최봉영 선생님을 만나 활용할 수 있게 된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나에겐 첫 회사 사장님을 시작으로 해서 7명의 멘토가 있다. 하지만, 책이나 프로그램 소스코드, 기타 활동 이력으로 나에게 스승이 되어준 사람은 더 많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자연처럼 나에게 혜택을 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년부터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로 하고
나도 10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스승이 되기 위해서 먼저 기록하고, 묻고 따지고 풀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