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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12. 2022

무엇보다, 고요하게 있기

일상에 고요를 구현하기 2

이 일이 정말로 필요한가?

마침 <스틸니스> 58쪽을 읽기 직전에 비교적 경력이 짧은 회사 동료에게 코칭할 때 내 의도와 같은 내용이 있어 신기한 마음에 페이스북에 올린 바 있다.

나폴레옹이 편지를 곧장 확인하는 않는 식과 같은 조치를 하면 얻는 이득이 시야 확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고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 순간 자신에게 물어라. 이 일이 정말로 필요한가?

또한, 저자는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Thick Nhat Hanh의 글을 인용했다.

우리에게 독을 끼치고 우리를 취하게 하는 것들의 소비를 멈추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때 우리는 내면에 있는 최선을 것을 끄집어낼 힘을 얻게 되고 더 이상 화나 좌절감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

순식간에 내가 고치지 못하고 사는 습관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삶에 쓸데없는 사건이나 상황을 끌고 들어오는 이기적인 사람을 밀어내야 한다.

아주 가까운 지인이 떠오른다. 그분께 '이기적인'이란 수식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부터는 내가 '이기적인'이라는 말을 잘못 알고 있던 것으로 여기기로 한다.

상쾌한 마음이야말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아침에 김기석 목사님의 아침 기도 영상을 볼 때 기분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자. 그냥 치자.

지나치게 분석하지 말자. 그저 할 일을 하자.

나도 자주 경험했다. 멈칫하고, 자꾸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며' 사실은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수많은 시간들 말이다. 계획은 무언가를 하면서 해야 한다. 분석이 걸어지면 허튼 생각으로 계획을 하기 십상이다.

압박감 없이, 그저 현재에 충실하게,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로 즐거워하며.

저저가 숀 그린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기록을 세운 비결을 설명하는데, 박문호 박사님이 월말김어준에서 설명한 뇌과학 강의가 떠올랐다. 정확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고, 운동능력에 자의식이 개입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빠른 반응이 가능하다는 정도로 기억한다. 그게 가능하도록 하려면 일단 게임을, 현재를 즐겨야 할 듯하다.


정말로 그것이 문제인가?

아래 글이 등장하는 장의 제목 해답을 찾는 생각의 태도란 표현은 <대체 뭐가 문제야>에 등장하는 '초보 문제 해결사'란 표현을 떠올린다.

우리는 실제가 아닌 그림자에 반응하고 시험해보기 전부터 확신을 갖는다. 안경을 쓰고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걸음을 멈추는 법이 없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뭔지 분명하게 이해하기 전부터 해답을 떠올린다. 저자는 제대로 생각하려면 규칙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당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보라.

정말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눈에 보이는 그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생각해보라.

장기판의 큰 그림이 어떨지 생각해보라.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라.

그리하면 다른 사람이 놓친 것을 우리는 알게 되리라고 조언한다.


머릿속 잡음을 잠재우는 가장 완벽한 방법

모든 게 너무도 힘들고 부당하고 낯설었다. 안네로서는 이런 감정을 쏟아낼 만한 곳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안네의 일기를 인용한 문장을 보면서, 종교의 역할중 하나인 고해소 대한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녀는 일기를 쓰면 스스로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릴 때 어머니가 일기 쓰기를 습관으로 만들어주신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다. 반면 아래 문장에 밑줄을 칠 때는 '응어리'와 '쏟아붓는'이란 문구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일기 쓰기는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응어리를 쌓아두는 대신 종이 위에 쏟아붓는 일이다.

정말 '응어리'같은 것이 있고 그걸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쏟아붓는' 이란 말은 내가 브런치를 쓰는 가장 큰 동기가 일종의 배출 flushing이란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 좌절감이 마음에 넘칠 때 흔히 잃게 되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편 주니어 동료가 운영 업무와 다른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 일과 중에 일지를 쓰라고 조연했던 경험과 그가 효과를 경험했다고 고했던 일이 떠올랐다.

통찰력 있는 생각과 해로운 생각을 구분 짓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데에는 옳은 방법도 그른 방법도 없다. 오직 중요한 건 그저 쓰는 것이다.

나는 기록이 습관이  편이지만, 정작 이제 일기는 쓰지 않는데 다시 써야겠다.

고요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고요를 만들어내는 반성의 시간이자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오는 작업이다.


진짜 필요한 소리를 듣기 위한 조건

침묵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타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된다

한동안 경청 능력을 잃었음을 깨닫고 복원할 때,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침묵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웠다.

본인의 신경계에서 나는 소리와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번번이 명상에 실패한 나는 경험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귀 기울여 듣기 위해 멈춰 섰을 때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야말로 세상에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직 공감이 안 되는 것을 보면 경청을 위해 갈 길이 멀다.

짧은 시간이라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마침내 이 세상이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침묵이 이토록 드물다는 건 그만큼 가치 있다는 신호다. 침묵은 우리에게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고요함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이를 붙잡아야 한다.

반성이 밀려온다. :)


소크라테스와 석가모니가 추구한 한 가지

소크라테스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인식하고 있었으며 틀렸다는 지적을 언제나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최근에 배우는 과학이 나에게 그런 성향과 태도를 키워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리와 깨달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는 우리 대부분이 실패하고 실수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런 믿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처음 TDD(Test Driven Development) 책을 펼쳤을 때 실패하는 코드부터 만드는 과정에 대해 느꼈던 충격을 생각하면 당시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하다.


톨스토이의 말은 모든 현대인에게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동의한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책은 가장 적은 돈과 시간으로 현자를 만나는 방법을 제공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문장은 내게 리드잇zine 4호 원고를 쓰게 자극한다. (궁금하신 분은 이후 글에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골리앗을 제압한 다윗의 힘

다윗의 자신감은 에고가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윗은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맨손으로 이겨낸 경험이 있고 자신의 강점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갑옷을 걸쳐본 다윗이 말했다. "이건 못 입겠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요." 그는 믿음은 물론이고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자기 인식으로 무장한 상태였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인데, 셰레명을 바꿀 수 있다면 '다윗'으로 개명하고 싶다. 사무엘서를 읽을 때 신선한 공감을 한 일도 있고, 중국에 살 때 다윗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삶에서 경험한 탓이다. 천주교는 개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 회사 이메일 아이디를 david로 바꿨다. 근자에 새긴 사업에 대한 자기 인식을 표현하는 계정으로 언젠가 활용할 생각이다.


최근 대선후보로 나온 누군가가 떠오르는 표현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실수로부터 배운다는 게 불가능하다. 주변의 모든 일을 복잡하게 만들며 뭐든지 자기 위주로 행동한다.

나도 과거에 이런 과오를 범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런 사람들과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는 뜻으로 밑줄을 쳤다.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네

역경에 대처하는 그랜트의 정신력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자기 자신을 혐오할 이유가 무엇인가? 창피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그랜트처럼 할 수는 없다.

희망과 차분함을 버린다고 득이 될 게 전혀 없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중략> 내면의 평화와 맑은 정신이라는 더 큰 영광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는 불은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뿐이다.

아래 내용과 거의 정반대의 취지로 쓰인 페이스북 글을 보았는데, 댓글을 달까 하려다가 멈춘 때가 기억난다.

자신감이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필요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준을 우리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자유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타인과의 견해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열등감 때문에 올바른 의견을 그릇된 의견으로 바꾸지도 않는다.

나의 첫 번째 멘토가 17년 전 알려준 여유 창출의 비결을 정교한 문장으로 만난다.

불필요한 갈등과 불확실함, 분노를 제거하는 행동이 비로소 고요를 얻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낸다.


느린 사람은 부드럽고 부드러운 사람은 빠르다

사업가들은 기회를 찾아보겠다고 일부러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자기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놓는다.

부끄럽다. (사업가로서) 처음에는 일부러 (거리를 돌아다니듯) 고객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급증과 싸워온 시간 덕분에 지금은 이 문장을 미소 지으며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게 해 줬다.

현재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경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지 못한다.

나는 과거 경험을 통해 위 문장이 어떤 느낌이나 순간을 지칭하는지 알 수 있다. 느낌을 알아야 이후에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제자들이 배우는 과정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길 바랐다. 궁도에 관한 고정관념을 버렸으면 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저 현재에 집중하고 마음을 활짝 열라고 충고했다. 그래야만 정말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궁도의 명인으로 전해지는 아와 겐조의 이야기다.

우리가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은 연습이고, 우리가 밀어내야 할 것은 고집스러운 의지다.

가뜩이나 의지를 믿지 않는 나에게 의지를 저격하는 명문을 투척하다니!


더불어 아래 문장은 가까운 지인에게 투척해야겠다.

자기반성의 노력은 물론이고 증상이 아닌 질병을 치료하려는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일상에 고요를 구현하기

1.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정신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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