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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01. 2022

어른답게 존중하고 존중받습니다

어른답게 말할 준비 2

벽에 부딪힐 때 반론하기

저자와 달리 반론이 공격적이고 과하기까지 했던 나를 돌아보며 아래 밑줄 친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1. 상대 의견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준다.
2. 공통점을 찾는다.
3. 자락을 만들어둔다.
4.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반대하는 이유와 근거, 대안을 포함하여 말한다. <중략> 반대하는 이유가 개인의 이해득실이어서는 안 된다.

1번은 오늘 낮에도 시도해볼 수 있는 상황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초점을 나의 실천에 맞추어 상대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자연스럽게 자락을 찾는 여유에서 호흡을 찾고 정서적 배려를 무시했던 습관을 극복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적이 내 안에서 틀을 갖춰 행할 수 있게 된다면 상대가 저의 반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원인 분석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합니다. (실제로 그럴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근거 있는 낙관주의자가 돼라

근거 있는 낙관주의자가 되라는 제목의 구절을 읽을 때는 최근 경험과 다른 곳에서 배운 바를 종합하여 아래 그림을 책 여백에 그려보았는데, 공유합니다.

직관적으로 그린 그림이라 지금 보니 어떤 의도인지 불분명한 내용도 있습니다. 일단은 공유해두고 다시 실천하고 살피며 깨닫는 부분이 있다는 글을 수정하겠습니다.


아이의 말은 강물과 같아서

가르치려 말고 잘 들어주라는 표현이 특히 눈에 띕니다.

아이들에게는 말하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려 말고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일단 들어주면 아이는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다. 그것을 잘 들어주면 된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줘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스스로 점점 잘하게 된다.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말 그대로 '잘 들어주자'는 각오입니다. 다른 하나는 꼭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행동은 아닌 듯하다는 느낌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하고 느낌의 이유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요즘 자주 쳐다보는 문구와 이를 뒤따르는 행동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그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보는 대신에 가만히 사람을 보는 행위 속에서 '수용과 이해'가 나오고 그게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래 문구에 기인한 생각이죠.

앞서 인용한 저자의 글 중에서 아래 문장은 특별히 제가 언급한 경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어 한다.


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저자가 부탁조로 쓴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마만큼 좋지 않은 행동인듯합니다.

제발 어떻게 말해보라고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그래서 네 생각이 뭐고, 네 의견이 뭐야? 그것을 통해 뭘 배웠고 어떤 교훈을 얻었지?" 하며 딱따구리처럼 재촉하지 말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주자. '무엇에 관해 말해보라'라고 하지 않고, '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라고 물어야 한다.

다 읽고 나니 명심할 이야기임을 깨닫습니다. 언뜻 그런 시도를 해본 듯도 하나 성공했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유심히 듣겠노라고 약속합니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훈련이 필요하다. 길게 말하는 것과 짧게 말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한마디로 하면 무엇인지' 묻는 방식으로 짧게 말하는 연습을 하게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길게 말하는 훈련을 시킬 수 있다. 물론 둘 다 중요하다.


내 말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비교를 꺼리며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쉰 살 전에 '쉰 살이 넘어서야 마음먹었다'는 저자의 글은 용기를 줍니다.

나는 얼굴보다 말이 더 그 사람의 인격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얼굴을 볼 게 아니라 말을 들어봐야 한다. 나는 쉰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내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마음먹었고, 이후 꾸준히 지키고자 하는 나만의 규칙이 생겼다. 첫째, 내가 하는 말을 곱씹어보며 말한다. 말버릇에 주의를 기울이며 말하는 것이다. 말뿐 아니라 말할 때 내가 어떤 몸동작을 취하는지도 눈여겨본다. <중략> 둘째, 남의 말을 유심히 들으면서 '나는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싶은 것을 찾는다. <중략> 셋째,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말하고  <중략>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않고 생각하면서 말해야 한다.  넷째, 같은 말이면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중략> 다섯째, 목적에 맞게 말한다. <중략> 무심결에 해버린 경우에는 곧바로 사과한다.

나 역시 그의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며 다섯 가지 규칙을 간단하게 헤아려 봅니다. 곱씹어 말하기, 반면교사 삼기, 또박또박 말하기, 생각하며 말하기, 긍정 표현 쓰기, 목적에 맞게 말하기. 다섯 가지 중에서 1, 3, 5번이 특별히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덕을 쌓는다'는 표현은 실천에 있어서는 다소 모호하다는 새각이 있었기에

훈계하는 사람은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아야 한다. 훈계는 점수를 잃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훈계와 애정은 한 묶음이다.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훈계는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렵다.

훈계와 애정을 한 묶음으로 하라는 조언은 매우 실용적으로 들립니다. 애정을 갖지 않은 대상에게는 훈계를 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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