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답게 말할 준비 3
이 글은 강원국 님의 책 <어른답게 말합니다> 중에서 3장 '유연하게 듣고 단단하게 말합니다'와 7장 '말보다 나은 삶을 살아갑니다'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기록하고 (실천을 위해) 제 의견을 추가한 글입니다.
(구절의) 제목을 보니 박문호 박사님의 뇌과학 동영상에서 재미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 어른의 단계이고, '창의'란 행동이 본래 그러한 뇌 작용에서 기인한 것이구나 깨닫던 때가 떠오릅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이건 내 얘기만이 아니라 당신도 해당하는 얘기'라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경험을 모두의 경험으로 만드는 일반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략> 경험은 가장 중요한 말하기의 밑천이다. 말문이 막히거나 말하기가 막막할 때는 경험을 얘기하면 된다. 그리고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용을 달아주면 된다.
쓰면서 다시 읽어보니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이야기를 하려면 바탕이 되는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중언부언하는 말 습관을 고치려고 (구절과) 같은 제목의 책을 구입한 일도 있어서 특별히 관심을 두고 읽었습니다.
닻을 내려놓은 선박처럼, 말이 떠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박해 있다. 결론을 중심으로 보태야 할 말만 하게 되니, 말이 꼬이거나 산으로 갈 확률이 줄어든다.
이 부분을 읽어보니 확실히 저에겐 결론을 말하는 습관이 취약했구나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두괄식으로 하자고 마음먹어도 실천이 잘 되지 않았는데, 저자는 정박이라는 비유를 해서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구나, 주제에 머물러야 하는구나! 지난 글에서 저자가 규칙으로 언급한 목적에 맞게 말하기에 제가 소홀하기 때문이겠죠.
틀에 박힌 말과 행동을 싫어하는 저에게는 특별히 더 눈에 띄는 제목입니다.
너무 도식적인가? 하지만 사람이 어찌 매번 창조적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만나본 말 잘하는 사람들 역시 그랬다. 평범함이 기본이다. 기초가 탄탄해야 하며, 틀부터 갖춰야 한다. <중략>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말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틀을 깨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틀을 멋지게 깬 말은 듣는 귀를 끌어당긴다.
다시 읽으면서 '아하!' 하는 글입니다. 매번 새로운 사람 혹은 서먹한 관계인 사람(예를 들어, 나에겐 이모부)을 만날 때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뻘쭘해하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 저에게 딱 틀이 필요한 상황이네요.
읽으면서 감탄했던 제목입니다.
참고 듣는 것으로, 상대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더 큰 호감과 공감을 얻어내기도 한다.
가끔 성공하고 가끔 실패한 회의 자리가 생각납니다. 판을 깔아주고 지켜보면 내가 염두에 둔 내용이 다른 이들의 소통 속에서 술술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는 끼어들어서 흐름을 더디게 하기도 했습니다.
눈을 맞추며 말하는 일은 나에게도 익숙합니다.
눈을 맞추고 말해야 한다. 단순히 시선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교감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에 응답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말한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에 따라 이런 교감이 불가능한 대상이 있습니다. 종종 반응속도를 맞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아마도 오랫동안 그런 관계가 고착화된 나쁜 징후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길게 말하는 걸 삼가고 많이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 하나 있다. <중략> 흔히 하는 말로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말로 나오는 순간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말을 듣는 엿장수 마음대로다. <중략> 말은 듣는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모르는 것이 아니면서,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그간 말을 해온 듯하여 부끄러운 내용입니다.
촬영이나 녹화가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스스로 모니터링하면 된다 <중략>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대화나 협상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 요행을 바라는 셈이다. <중략> 예습과 복습이야말로 말을 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자 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자신이 없지만, 뜸을 좀 들이더라도 언젠가는 도전해볼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문장도 꼭 기억할 만합니다.
말하기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