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의 탄생> 저자 김현철 교수님의 영감 터지는 글을 보고 글을 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현이 '인력 양성'이었다. 구글링 해보니 역시 새 정부에도 이런 한심한 짓거리를 계속한다. 마치 교육부가 사교육을 이용해서 학력 평가 위주의 교육에 의존하는 외주 정신이 그대로 투영된 안전한 정책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현철 교수님에 따르면 그 정도가 아니라 '국가주의 악령'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느라 교수님의 글에 밑줄을 치다가 놓쳤던 명문을 또 읽었다.
어디다 써먹을 인력으로 키우는 데 있지 않다
'써먹을 인력'이라는 표현을 보자 테일러리즘이 떠올랐다. 나는 그 표현을 XP 책에서 처음 배웠는데, 최근 <프로젝트에서 제품으로>라는 책 모임에서 나눈 대화 탓이다.
나는 개발자를 '써먹을 인력'으로 보는 순간 테일러리즘이라는 늪에 빠질 수 있다고 믿는다. 늪으로 비유한 현상 중에 하나가 <레거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가?>편에서 설명한 세 명의 경영자(오너)의 상황이다. 다음 수를 둬야 하는데, 바둑판의 줄이 그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적어도 개취인정을 하고 개발을 요청할 때에만 (창의적) 지식노동은 작동한다.
전통적인 화이트칼라 들의 관리 방식에 개취인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HBR에 자주 보이는 '서번트 리더십'을 하려면 개취인정 정도는 기본일 듯도 하다.
다시 김현철 교수님의 글로 돌아가 배경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 바로 위에 김교수님의 탁월한 교육관이 있다.
한 개인이 꿈을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아쉽게도 나는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선생님을 (석사취득까지 만난 선생, 교수님들 중에서) 겨우 한 명만 뽑을 수 있다. 중학교 1학년때 전교조 설립을 추진하던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그 분은 다른 어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중학생을 키워냈다. 그게 나고, 그 후로 내가 만난 선생님들이나 교수님들은 내 꿈에 관심이 없거나 (자기가 제시하는 일외에 불분명한 일은) 하지 말라는 말만 했다.
다행히 김교수님이 말씀하신 내 꿈을 이루는데 도와준 이들을 사회생활에서 만날 수 있었다. 7명의 멘토로 기억하는 그분들은 나에게 멘토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그저 그들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고, 내가 도움을 청할 때 그들은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나는 대학을 포함한 공교육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인데, 김교수님이나 이민석교수님 같은 분들을 보며 그래도 제대로 된 교육자가 있기는 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