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Jul 25. 2022

레거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가?

대한민국 기업의 디지털化 - 8화

지인의 글이 나를 자극해서 쓰는 글이다. 참고로 이일민 님은 어떤 맥락에서 저런 글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문구만 보고 드는 생각을 기록한다.


레거시와 레거시 시스템

위키피디아에서 레거시(legacy) 페이지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쓰임을 갖는 단어다. 대표적인 용례로 설명하는 레거시는 우리 말로 '법적 유산'을 뜻하는 듯하다.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해서 기술(Technology) 섹션에 보면 레거시 시스템은 별도 페이지로 설명한다. 하지만, 간단한 뜻은 굳이 페이지에 들어가지 않아도 아래 문장으로 요약한다.

Legacy system, an outdated computer system

오래되어 낡은 코드를 의미한다. 하지만, (법적) 유산으로 물려받은 코드인 경우가 많다. 직접 계약서를 쓰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작성한 코드가 한참 뒤에 나에게 넘겨지는 경우 보통 레거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내가 쭉 작성하고 책임져온 코드를 레거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레거시 코드는 나쁜 것인가?

기업의 시스템을 가정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작동하고 운영중인 코드는 가치를 생산한다. 직접 돈을 벌 수도 있고, 상품 판매나 영업 활동을 지원하는 형태로 간접적으로 매출에 기여할 수 있다. 그 코드가 낡았는지 현재 상황을 잘 고려해서 만들어졌는지는 경영자에게 감지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는 레거시 코드(프로그램)를 수정해야 하는 개발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가 평온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코드 작성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수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요구하게 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심지어 불안감을 초래해 자리를 떠나고 싶은 개발자들도 볼 수 있다. 바로 이 간극 즉, 조직내 소통이 어려운 모호함과 그에 따른 균열을 낳는다는 것이 근본 문제일 수 있다.

경영자와 개발자 사이의 균열(혹은 간극)은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얼마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개발자)이 자사 솔루션의 기술요소를 바꾸는 일을 가이드하는데, 레거시 기술요소를 바꿔야 될 이유를 모르겠다며 굉장히 미온적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사장이 요구해서 한 일인데, 다른 모든 개발자들은 사장의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이러한 갈등 양상에 대해 생각하면서 코드나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 시스템인 기업을 떠올렸다. 이와 연결지을 수 있는 몇 가지 일화가 소환되었다.


대기업의 디지털 전환의 어려움

몇 달 전에 대기업 재직 중인 지인이 혁신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일이 있다. 회사가 커온 과정에서 벌어진 부조리를 최고 경영자가 청산할 생각이 없다는 논리였다. 이를 그대로 둔 상태로 아무리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도 혁신은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투자와 시장 변화에 대한 지인과의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들은 이야기 중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혁신을 이룬 테슬라와 수많은 부품제조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의 차이도 '발목 잡는 레거시'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다. 테슬라 오너인 지인이 나에게 테슬라를 사라면서, 구입도 앱으로 하라고 알려준 일이 있다. 반면에 기아차를 사려는 지인은 딜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제조 과정뿐만 아니라 판매 과정에서도 거대한 레거시(?)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입장에 따라 달라 보이는 레거시

딜러 네트워크를 레거시라고 부르는 일에 딜러들과 딜러 회사는 동의할 수 있을까? 나는 타다 사태가 떠올라 구글링을 해봤다. 나는 이들 갈등에 대해 설명하거나 견해를 밝힐 생각은 없다. 다만 레거시 인식에 대해 경영자(혹은 오너)와 개발자의 간극뿐 아니라 기업 구성원 사이에서도 극명한 대립이 있을 수 있고, 기업을 넘어서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도 그러하다는 일종의 패턴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사실이다. 기존 유산이 레거시라 불릴 요소인지 버리거나 넘겨주지 않고 계속 유지해야 할 기업의 자산인지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내 입장에서 본 레거시 청산(?) 필요성

사회 담론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 이쯤에서 내 상황과 나의 주관으로 돌아오자. 프로그램 개발을 하지 않는 내가 지인의 레거시 시스템 관련 문구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스타트업 경영과 몇몇 경영자들에게 디지털 전환 자문을 병행하는 입장에서 투영해도 꽤 의미있는 문구였기 때문이다. 

남들의 복잡한 문제를 내가 정의할 수는 없고, 내가 받은 영감에 대해서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요점 2개만 추려본다. 


하나는 스타트업도 레거시가 있냐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있기 어렵다다. 하지만 적어도 잠재 레거시 혹은 유사 레거시라고 부를만한 요소들이 있다고 느낀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단호하게 정의할 수 있다.

시장에서 채택하지 않는 결과물은 레거시다.


두 번째 요점은 최근 서로 전혀 다른 상황의 세 기업 대표와 나눈 대화에서 얻는 일종의 패턴이다.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해도 그들이 실행할 수 없는 현상이 공교롭게 3곳에서 벌어졌다. 대기업도 아니고 투자를 받아 성장하는 기업들인데도 말이다. 지난 주에 나는 (이들 세 기업을 모르는) 지인에게 이 현상을 설명했더니 '다음 수를 보고 행동할텐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이 나에게 영감을 주어, 나는 패턴으로 보였던 세 기업 경영자의 상황을 둘 곳이 아니라 줄이 보이지 않는 바둑판을 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판 위에 가로/세로 줄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음 수를 둬야 하는데 줄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대한민국 기업의 디지털化 연재

1. 리더가 극복할 7가지 필수 스트레스 (上)

2. 리더가 극복할 7가지 필수 스트레스 (下)

3. 검색의 미래 그리고 진실의 순간

4. 공헌이익과는 다른 디지털화 이야기

5. 이력서 대신 깃허브 코드를 좀 봐주세요

6. 보고서나 회의 없이 간단한 업데이트 통지하기

7. Git스러운 협업 체인 만들기

작가의 이전글 동정일여 그리고 몇 주간의 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