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모델에 대한 영감을 주는 페친님의 글이 있다. 페친님의 글에서 감응을 주는 문구를 SaaS 사업의 사례에 빗대어 보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자. 그 전에 구독 모델과 SaaS 관계에 대해 간단히 짚고 가자.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는 <린 분석> 독서모임의 지인이 SaaS를 들으면 (콘텐츠) 구독 모델과 구분이 잘 안 간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싶었다. 게임에 관심이 많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없다면 그럴 수 있다. 나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오랫동안 업으로 해오고 있다. 지금은 경영을 하지만, 우리 회사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그런 입장에서 SaaS는 시대에 맞는 판매 방식 즉, 시장을 선택한 결과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방식이 구독 모델이다.
이제 페친님의 글을 인용하며 아래 세 문장은 굉장히 영감을 주는 내용이다.
구독한 제품은 그때 소비해야 한다 <중략> 이게 밀리면 구독 해지한다. 제품을 이용하면(마시면) 사라진다.
내가 여기서 받은 영감은 SaaS 과금에 대해 직관적으로 '사용자 기반 과금과 매출 기반 수수료 과금' 두 가지로 좁혀서 생각하던 틀을 해체하고 본질적으로 생각하게 된 점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적용하면, 제품은 곧 경험이다. 해당 기업의 목표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성과가 바로 나오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편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둘 다 충족해야 한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사업에 즉각 도움이 되거나 적어도 도움은 되면서 편하게 해줘야 (역지사지로) 지불하지 않겠는가?
중국에 있을 때 썼던 <클라우드 비즈니스 - 사업자 관점에서 본 SaaS>편에서 지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클라우드 사업을 설명하며 그렸던 비용 모델도 당시에는 나에게 상당한 영감을 주었는데 그 이후 오랜 만에 비슷한 자극을 받는다.
지불가능성을 본질적으로 생각해보는 데에는 우유나 신문 구델 모델 비유가 꽤 효과적이다. 우유를 다 소비하지 못해 버리고 있다면 구독을 끊을 것 아닌가? 단순한 이치이지만, 아직은 산업 초창기라고 봐야 한다. 사용 경험 자체가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아직 급진적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흔히 쓰였던 라이선스로 기준의 비용 청구 방식과 비교하면 놀라운 혁신이다.
아무튼 나 스스로는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으니 문장으로 써보자.
기업용 앱은 사용 경험 자체가 제품이다.
다시 페친님 글 일부를 인용한다. 이 부분에서 얻은 영감을 둘로 나눠 쓰고 싶다.
맛있는 서울우유 흰우유를 시키면, 맛있는 서울우유 흰우유만 보낸다. (가끔 프로모션을 하지만) 현관앞에 흰우유. 초코우유. 딸기우유 - 서울우유, 남양우유, 매일우유 이거저거 잔뜩두고 다 먹어봐요 해서 고객을 힘들게..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하나는 소비자가 요구한 제품만 보내야 하듯이 소프트웨어 역시 사용자가 필요한 기능만 제시해야 한다. 언젠가 읽었던 아래 책 제목을 보면 소프트웨어가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가 꽤 많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불일치 즉, 사용자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공급하는 일이 왜 벌어지는지 최근에 관찰한 2가지 경우를 기억한다. 하나는 개발자와 영업 담당자 사이에서 회의를 진행하며 느낀 일이다.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기능 중에서도 시간을 많이 쓰거나 최근에 만든 일에 굉장한 애정을 쏟아 설명을 했다. 얼굴 표정에 드러났다. 하지만, 영업은 전혀 다른 입장과 태도로 이야기를 들었다. 시장에서 그간 느꼈던 필요성과 고충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둘 다 자기 입장에 충실한 것이지만, 사용자가 필요하지 않은 고급 기능(?)은 팔리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일을 경험이 제품이라 벌어지는 일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제품이 경험이라 쓰이지 않는 것을 개발할 소지가 많다. 출시(Release)하지 않고 많은 기능을 상상으로 만들면 그런 위험에 노출된다. 지난 주 하루 건너 한 명씩 아주 가까운 사람이 갤럭시와 아이폰을 비교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오랜 (중국에 있는 동안 OPPO와 샤오미폰을 쓰고) 아이폰 사용자다. (갤럭시는 아이폰의 사용자가 경험을 줄 수 없다고 믿는다.)
한 지인은 갤럭시의 새로운 모델에 실망해서 아이폰을 처음 써보면서, 갤럭시는 줄 수 없었던 연결성에 대해 흥분하며 이야기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아이폰 영업사원이 아니고, 내가 아이폰만 써온 십년 이상을 갤럭시만 쓰다가 처음 아이폰을 쓴 사용자다. 그에게 방금 전에 핸드폰으로 하던 일을 패드가 기억해서 지속해주고, 애플워치가 내가 하려는 행동을 알아채듯 서비스하는 장면을 놀라워했다.
반면 갤럭시가 자신에게 유용하다고 말하는 지인은 하나의 부품(카메라 모듈)과 기능(통화 자동 녹음)을 이유로 들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인식한다.
아이폰 사용자는 경험을 중시하고, 갤럭시 사용자는 기능을 고려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특징 탓에 빚어지는 또 다른 불일치가 있다.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작성하는 차원에서도 밝은 코드나 기술을 사용한 경우 레거시라고 불린다.
<레거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가?>편에서 내가 인용한 지인의 문구를 보자.
그리고 페이스북에 <레거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가?>편을 공개했을 때 달린 댓글이 주는 인상은 꽤 다르다.
<레거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가?>편에서 언급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내 입장에서 레거시 해석은 이렇다.
시장에서 채택하지 않는 결과물은 레거시다.
페친님 글 하단의 내용은 사진 이미지와 함께 또 다른 자극(영감)을 주었다. 나는 지난 10년간 디지털과 리테일이 만나는 공간을 주요 활동 시장으로 삼았다.
스타트업에서 SaaS 를 만들기 전에도 소매(리테일) 분야에서 IT를 중심으로 한 혁신 활동에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발견한 몰랐던 현상은 물건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소비에 비해 과잉 생산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이커머스에서 기획전이라 불리는 행사는 사실상 상시행사라 '기획전'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그리고 최근 중국인 지인이 숏비디오가 중국 이커머스의 주류가 되었다며 그 유명한 광군제(双十一) 매출의 반이 비디오 커머스에서 난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매일 광군제를 하는데 누가 11월 11일을 기다리겠나?
나는 생산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하던 것을 하지 말고) 비용을 지불할만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일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웨어 역시 (개발자가 자기 생각과 실력을 증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용자가 원하는 경험을 만드는데 기여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구독모델과 SaaS에 대한 고찰을 생각의 흐름대로 기록해봤다. 페친님의 글 덕분에 지불 가능성은 우유나 소프트웨어나 본질은 비슷하지만, 최근 들어 시의적절한가 하는 질문이 중요해진 듯하다. 이는 물건이 넘쳐나는 과잉 생산의 시대라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다른 말로 제품 자체보다 경험이 중요해졌다고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마침 <린 분석>을 함께 읽기도 하는데 이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력만큼이나 측정하는 데에도 노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