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Origins을 읽고 생각 기록하기 3
호미닌과 함께 홀로세는 <오리진>에서 처음 본 단어 중 하나다.
홀로세는 현생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간빙기인데, 간방기가 시작된 직후에 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농업을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농업 발전의 동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 모양이지만, 기후 변화가 결정적인 계기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농업의 발전은 농사를 덜 위험하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기후 변화에 자극을 받아 일어났을 수도 있고, 반대로 기후 조건의 악화가 가져온 지역적 충격 때문에 정착 생활을 하던 공동체가 식량을 구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마지막 빙기가 끝난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분명하다. <중략>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간빙기는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조건이 특징이다. <중략> 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었을 마지막 빙기 이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전 지구적으로 작용한 효과였다. 전 세계 각지의 문화들에서 거의 동시에 농업이 발달한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신석기 혁명이라고 외운 그 현상은 (<사피엔스>에서 본 듯한 표현인) 농업 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식물의 생존 전략과 인간 생활의 양상을 연결해주는 설명이다. 진화적 관점으로 보면 초본 식물의 출현은 하나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풀의 생존 전략은 빨리 자라고, 태양에서 얻은 에너지 대부분을 나무처럼 튼튼한 뼈대를 만드는 대신에 씨를 만드는 데 투입하는 것이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토스트나 시리얼을 먹는 생태학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불어 나는 초본식물이라는 생소한 표현을 배운다.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본식물(草本植物, herbaceous plants)은 줄기에 목재를 형성하지 않는 식물이다.
뒤이은 설명 중에서 우리에게 4개의 위가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은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소가 아니어서 질긴 식물 물질을 분해해 영양분을 추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4개의 위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에너지를 낟알에 농축한 식물 종을 선택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위보다는 뇌를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신체 기능에 비유한 도구들의 쓰임을 연결하며 우아하게 풀어낸다. 그야말로 놀랍다.
낟알을 갈아 가루는 만드는 데 사용하는 맷돌은 우리의 어금니를 기술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곡물 가루를 조리해 빵으로 만드는 오븐이나 쌀과 채소를 끓이는 데 사용하는 솥은 몸 밖의 전소화 계통과 같다. 우리는 열과 불의 화학적 변화 능력을 사용해 복잡한 식물 화합물을 분해함으로써 영양분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었다.
뒤이어 등장하는 내용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109쪽에 저자가 언급한 '부산물 혁명'이라는 말을 아래 단락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양, 염소, 소 같은 동물은 식량을 가공 처리하는 기계와 같다. 이 동물들은 사람이 섭취할 수 없는 풀이 잘 자라는 평원에서 잘 살아가는데, 풀을 섭취해 영양분이 많은 고기와 골수와 젖으로 변화시킨다. 또한, 옷과 침구류, 천막을 만드는 데 쓰이는 틸과 펠트, 가죽도 생산한다. 유목 사회에서 이 동물들은 생존의 기반과 교역 가능한 부의 원천을 제공한다.
마지막 문장에 등장하는 '부의 원천'은 생존 전략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고 다음 단락의 제목을 연상시킨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농부들은 아주 효율적으로 더 많은 농부들을 낳았다.
그런데, 무엇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란 말인가?
농업은 덫이기도 하다. 어떤 사회가 일단 농업을 발아들이고 구성원 수가 증가하면, 더 단순한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가기가 불가능하다.
현대 생활의 감각으로는 이게 왜 덫인지 분명치가 않지만, 저자는 곧 이해하게 하는 설명을 제시한다.
농업에 의존해 인구 밀도가 높은 상태로 정착해 살아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 구조가 발달하는데, 수렵 채집인 사회에 비해 평등이 줄어들고, 계층 간 부와 자유의 격차가 커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라는 척도는 지구적 스케일이다. 농업 혁명 때 인류가 놓은 덫은 현재도 유효하다. 시각차가 있겠지만 현대인 누구도 계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듯하다. 다만, 지구적 스케일로 보면 신석기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는 기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저자는 친절하게 또 설명해준다.
기원전 3800년 무렵에 기후가 또다시 서늘해지고 강수량도 줄어들었다. 강들 사이의 비옥한 땅은 말라붙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마을 농부들은 자원과 인력을 공유하면서 함께 모여 점점 더 큰 정착 사회를 이루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더 광범위한 관개 조직을 운영할 수 있었다. 농업과 운송을 위해 이러한 수로를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중앙 집권적 행정 조직과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 조직이 필요했다. 그래서 농업을 통해 세계 최초의 도시화된 사회가 탄생한 사건이 바로 이곳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요점 정리하는 듯한 유려한 설명이 이어진다.
사하라 지역이 마침내 완전히 메마른 땅으로 변한 기원전 3150년 무렵에 이 지역은 이집트 왕조의 파라오가 지배하는 통일 국가가 되었다. <중략> 고대 이집트는 지리적 환경과 기후가 가져다준 제약과 기회가 결함해 문명의 발달에 어떻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저자는 이와 함께 생소하고도 민망(?)하기도 한 혁명을 말한다. :)
우리가 소비하는 식물은 거의 다 속씨식물이라는 한 특정 집단에 속한다.
뒤이어 속씨식물과 정반대일 듯한 느낌을 주는 식물에 대해 말한다.
겉씨식물은 석탄기 말에 나타나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전나무, 소나무, 삼나무, 자문비나무, 주목, 레드우드를 포함해 온갖 종료의 구과 식물로 발달해갔다. <중략> 껍질 속에 안전하게 들어 있으면서 저장된 에너지를 약간 포함한 이 씨는 땅에 떨어져 발아하기에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 진화적 혁신 덕분에 식물은 습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식물에 대한 경험과 배경지식이 지극히 부족한 입장에서 사고만으로 좀 비약을 무릎쓰면, 겉씨식물의 생식은 인간과 거의 유사하다. 성인이 된 남성은 늘 생식을 할 기회가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사회적 진화)를 활용해서 생식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여성 입장에서도 비슷할 수 있다. 여자가 남자보다 조건을 따진다는 최근의 주장이 있지만, 남자가 그러하듯 여자도 가장 유리한 종족 생산(보존을 위한 활동)을 위해 결혼을 도구로 활용한다.
한편, 저자는 나의 무지에 대해 최소한의 식물에 대한 교양을 심어주는 디테일한 묘사도 선사한다.
세상은 화려한 꽃의 색들과 자극적인 냄새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꽃이 피는 속씨식물의 전문화된 생식 기관은 자신의 생식을 돕도록 동물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씨가 들어 있는 씨방은 씨의 확산을 돕는 과육질 수단으로 발달했다. 즉,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환상적인 비유이자 스토리 텔링이다. 며칠 전 아내와 등산을 할 때 위 문구를 응용해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내도 나름의 소견으로 영감을 주는 답을 했다. 그리고 다시 곱씹어 보니 열매는 포유류의 특징과 유사한 듯도 하고, 전문화된 생식 기관은 패션 산업의 태동과 비슷한 진화란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