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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22. 2022

지구적 스케일 그리고 지리적 특성으로 보는 섬나라

오리진Origins을 읽고 생각 기록하기 2

<오리진>의 2장 '사피엔스는 왜 이동을 시작했는가'만 읽어도 사실은 그동안 전혀 무지했던 질문에 대해 바로 답을 얻은 듯하다.

지질학 혹은 지리학이란 학문은 왜 존재하는가?


저자의 놀라운 필력과 노고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특유의 호들갑과 함께) 기록하려고 한다.


지구적 스케일 이해하기

아래 문단을 읽을 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산업 혁명 이래 평균 기온이 꾸준히 그리고 특히 지난 60년 동안 급속히 상승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 활동이 초래한 최근의 이 기온 상승은 제4기의 장기적 빙하시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하나는 언론의 자극적 표현에 대해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인지라 주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 표현을 지나치게 사용하고 사실을 변형하는 언론의 행태가 이제는 보편적이다. 아래는 구글에서 '역대급 이상 기후'로 검색을 한 결과다.

내용보다 제목은 더 자극적인데, 이를 바로 사실과 연결하면 일상에 해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가 아니다. 베스트셀러인 <팩트풀니스> 153쪽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한때 우리 조상의 생존을 도왔던 공포가 오늘날에는 언론인을 먹여 살리는 데 일조한다.


그래서 사실에 충실해지는데 (인용한 표현 중에서) '제4기의 장기적 빙하시대'란 표현이 열쇠가 된다. 디테일을 떠나 나무위키에서 찾은 지구의 온도 추이를 보면 최근의 진폭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편이다.

출처: 나무위키

나는 내가 그간 배운 지식 안에서의 척도(스케일)와 지구 전체의 역사를 다루는 척도가 매우 다른 점을 깨달았고, 나의 편향(?)을 벗어나기 위해 이를 편의상 '지구적 스케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구적 스케일에서 보면 현대(현세)는 간빙기의 아주 짧은 시기일 뿐이다.

1만 1700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처럼 각각의 간빙기는 기후가 다시 빙기로 돌아가기 전의 짧은 휴식기에 지나지 않는다.


온실에서 얼음 저장고로

인류를 포함한 동물의 이동이 빙기의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이 이동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빙기 이후에 유럽과 아시아의 나무 종들은 평균적으로 매년 100m 이상의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들도 그 뒤를 따랐다-식물을 먹고사는 초식 동물이 먼저 이동했고, 포식 동물도 그 뒤를 따라갔다.

통념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식물의 이동이라는 함축적인 비유가 매력적이다. 아마도 개체의 이동이 아니라 개체 분포의 이동으로 봐야 저자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일 듯하다.


기후 변화와 계절이 엮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한다.

서늘한 여름이 계속되면 매년 겨울에 새로 내리는 눈이 완전히 녹지 않고 쌓여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두껍게 쌓인다.

아래 문장을 통해서 뻔해서 질문하지 않는 계절이 존재하는 이유도 다시 보게 된다.

만약 지구가 완벽하게 똑바로 선 자세로 돈다면, 계절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축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일 년 중에 절반은 태양 쪽을 향해 기울어진 북반구가 남반구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아 여름이 된다.

다시 기후가 추워진 경위를 지구적 스케일로 설명하는 문장이다.

지난 5500만 년 동안 지구는 계속 냉각되었고, 지구의 기후는 온실에서 얼음 저장고로 변했다. 이 사건을 그것이 일어난 지질 시대의 이름을 따 신생대 냉각화라 부른다.

책에는 다양한 과학적 발견을 예로 들어 점점 추워지는 피드백 고리를 설명하고 있다.


단 한 번의 대탈출

여기서 인류에게 발생한 중요한 사건에 대한 해석으로 글의 초점이 이동한다.

기후가 더 차갑고 건조하게 변하자 동아프리카의 숲이 줄어들면서 초원으로 변했고, 이것은 호미닌의 발달을 촉진하는 조건이 되었다. <중략> 약 6만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아프리카를 벗어나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고고학적 발견의 한계로 이러한 과학적 추정은 DNA 조사로 내려진다는 점이다.

사람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중략>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은 여전히 확실하다. 게다가 유전자 연구는 오늘날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차례에 걸친 이주 물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아프리카 대탈출 사건에서 유래했으며, 그때 이주한 사람들이 수천 명을 넘지 않았다고 시사한다.

피부색을 기준으로 나누는 인종과 DNA에 따른 유전적 다양성은 관련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내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인 '반직관을 수용하고 현실을 그대로 보기'로 다가간다.

오늘날 아프리카인이 아닌 사람들의 유전 암호 중 약 2%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했다. 오늘날의 동아시아인이 유럽인보다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더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를 지나갈 때 네안데르탈인과 섞이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한편, DNA 구성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장면은 매우 흥미롭다.

멜라네시아와 오세아니아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DNA 중 4~6%가 데니소바인으로부터 유래했으며, 이들의 유전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 암호에도 약간 섞여 있다. <중략> 아프리카에 남은 원주민 중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DNA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수 혈통'을 따지는 인간들의 습성의 있는데, 그에 따르면 순수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원주민뿐이다. :)


섬나라 다시 인식하기

글을 쓰면 아래 문단을 몇 차례 읽어보면 다양한 자극을 준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섬들에 상륙할 때까지 그 후 1만 6000년 동안 구세계와 신세계 주민들 사이에 지속적인 접촉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유전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자연환경에서 다른 동식물을 접하면서 서로 격리되어 살아온 이 두 인류 개체군은 각자 독자적인 문명을 세웠다.

앞서 설명한 호미닌의 대탈출은 베링 육교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베링 육교가 사라지자 오랜 시간 동안 두 세계는 나뉘었다. 지난 글에서 다룬 판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상기시킨다. 다음으로 유전적으로 같아도 환경이 다르면 외양부터 확연히 달라 보이는 인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육로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이어 섬나라 환경이 제국의 배경이 된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방어해야 할 육상 국경이 없는 영국은 유럽 대륙의 경쟁국에 비해 군사비 지출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에 해군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는데, 영국 해군은 단지 국가를 방어하는 데에만 몰두한 게 아니라, 에스파냐와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대체해 해상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외 식민지를 방어하고 상업적 이익과 교역로를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아래 문장에서 '지질학적 특징'이라는 표현에 살면서 처음으로 관심을 둔 듯하다. :)

오늘날 전 세계에서 보는 지질학적 특징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영국이 여전히 육교를 통해 유럽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면, 나치 독일에 저항하던 이 최후의 보루도 유럽을 휩쓴 독일군의 전격전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을까?

영국에 대한 지질학적(?) 이해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지리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이렇게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미국은 사실상 섬나라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유럽과 반대쪽으로는 아시아와 해상 교역을 쉽게 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이 경제적 성공과 함께 자유의 이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지리적 환경이 제공한 조건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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