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에 위치한 숙소 묵기
베이징에 가면 만리장성, 자금성, 이화원, 천안문 등 중국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굵직한 관광지가 참 많다.
하지만 베이징의 매력을 하나 뽑으라면 의외로 '후통'이라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후통은 연나라, 명나라, 청나라를 거쳐 조성되어온 골목으로 500년 역사를 간직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삶의 공간이다.
이번 여행은 주말 밤도깨비 여행이었기에 많은 것을 본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물론, 자금성도 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더더욱 숙소만이라도 베이징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후통에 위치한 곳을 택했다. 퇴근 후 금요일 자정이 다되어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숙소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엄습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골목골목을 들어가는데 도저히 호텔 같은 것이 있을만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가 도착했다고 해서 내리긴 했지만, 어딜 봐도 호텔 간판 같은 것은 없었다. 내가 어딜 예약한지 모르고 있던 G는 더욱 어리둥절 했다.
대체 무슨 숙소를 예약한 거야?
그래도 번지수 맞춰서 들어가니 직원과 리셉션이 나와 안심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을 따라 뒤로 돌아가면 작은 골목 양 옆으로 룸들이 있었다.
500년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에 당연히 현대식 시설과 깨끗함을 기대하면 안 된다. 약간의 누추함과, 프랜차이즈 호텔에 비해 열악한 시설은 어쩔 수 없다. 그러한 문제 때문인지 (그래선 안되었다고 생각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수많은 후통이 철거당했다고 한다.
밤늦게 어두운 골목길에서 겁을 미리 먹은 탓인지 방은 우리의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늑했다. 화장실에서 약간의 퀴퀴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다음 날 아침 밝은 곳에서 다시 본 숙소는 고즈넉한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숙소를 나와 그 골목(후통)을 거닐며 탐색을 해보니 곳곳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 생동감이 느껴졌다.
재밌는 점은 어디에도 가게 간판은 딱히 없었지만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분명 사람들이 갓 장을 본듯한 봉지를 들고 다니는데 슈퍼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한참 헤매던 우리는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유난히 사람들이 드 다니는 어느 집을 기웃거리다가 그곳이 슈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미용실도 정육점도 발견했다.
여행이라고 하기도 좀 너무 짧은 하루 반나절 일정에서, 그래도 베이징의 정취를 푹 느낄 수 있었던 것 숙소를 오가며 후통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