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보여주는 생각보다 많은 것
베이징에 왔으니 전통 찻집에 가서 차 한잔 마시자.
미리 검색해 한참 걸어가 찾아간 찻집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았다. 찻집이 뭐 다 비슷하겠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풍스러운 가옥 디자인에 茶 라고 쓰여있는 표지를 따라 들어갔다.
찻집을 찾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들였지만, 무작위로 찾아들어간 이곳은 썩 맘에 들었다. ㄷ자 구조의 가옥 디자인에 마당에 앉을 수도 있고 실내에 앉을 수도 있는데 날씨가 선선하고 좋아서 바깥쪽에 앉기로 한다. 직원들은 모두 전통 옷을 입고 있었고 책상에는 싱그럽게 생화가 꽂혀있었다.
세련되게도 태블릿으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태블릿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본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티팟 하나에 700위엔대부터, 젤 저렴한 것이 300위엔대였다.
350위엔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지... 6만 원? 인당 3만 원인 셈이네..?!
당황스러웠다. 어디서도 이렇게 비싼 커피든 차든 마셔본 일이 없었다. 어쩌면 중국의 전통 찻집이 대게 이 정도 가격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찻잎들의 원가라든지 종류도 잘 모르고(메뉴판은 전부 중국어였다) 보통 베이징의 찻집들의 가격도 모르는 상태였다.
G: 여기 너무 비싸겠지?
나: 가장 저렴한 걸 시켜도 6만 원인데... 차를 6만 원 주고 마시는 건 좀 아니지?
G: 그래.. 그럼 나갈까?
나: 그러자... 아니다.. 그냥 제일 저렴한 걸로 시켜볼까?
G: 어떻게 하고 싶어? 너가 결정하는 걸로 따를게.
G는 내게 결정권을 맡겼다. 내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1. G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수긍할 것 같았다. 너무 비싸긴 해도 가격을 보기 전까진 그도 이 곳에 만족했던 것 같다.
2. 지금 여기서 나간다면, 또 찻집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많이 걸어서 체력적으로도 지금 쉬어야 할 타이밍인데. 그리고 이렇게 좋은 분위기의 집은 찾지 못할 거야.
3. 하지만 6만 원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밥 값도 아니고 차를 마시는 비용으로는? 그렇긴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별다른 투어비용도 없었고 비싼 식당도 가지 않았다. 설사 이 찻집을 가지 않는다 해도 나의 총 여행비용이 43에서 40이 되는 것뿐인데, 그보단 지금 누리는 게 좋겠어.
생각보다 많은 연인들이 서로의 다른 소비습관 때문에 싸우곤 한다.
얼마 전 친한 친구인 K도 남자 친구와 주말여행 계획을 짜다가 말다툼을 했다. 그녀가 골라온 숙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그녀의 기준에서 13만 원짜리 숙소는 별로 비싼 것이 아니었다. 이보다 싼 숙소라면 별로 여행의 기분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보다 남자 친구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기준 비용을 제시하고, 의견을 말해서 대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어물어물 싫은 티만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기가 숙소비용을 내도 좋으니까 무슨 말이든 하라고 다그쳤다가, 그제야 그녀의 남자 친구는 아래와 같이 사과했다.
비싸다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그랬어.. 난 진짜 너한테 돈 쓰는 것 아깝지 않거든. 그런데 절약하면서 사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나도 내가 좀 짠돌이 같아서 그래. 미안해.
결혼한 친구인 Y가 이 얘기를 듣고는 자기 얘기를 해줬다.
난 남편이랑 여행 갔을 때 별도로 10만 원 환전해서 갔어. 무슨 식당만 데려가면 메뉴판 가격보고 인상부터 찌푸린다니까. 뭘 사 먹는걸 너무 돈 아까워해. 그 돈은 내가 먹고 싶은 거 눈치 안보고 사 먹으려고 일부러 별도로 준비해 갔던 거야.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으므로 잘잘못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소비 성향 때문에 갈등을 빚는지는 알 것 같다.
소비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선택이다. 이만큼의 돈을 포기하면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수많은 가치판단을 한다. 그리고 가치판단의 기준은 일생을 거쳐서 보고, 자라고, 겪으면서 만들어진다. 하나를 사더라도 1부터 10까지 찾아보고 각종 쿠폰을 써서 제일 저렴하게 사는 사람과, 집에서 가까운 매장에 가서 단번에 사는 사람의 인생은 분명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참, 내가 갔던 저 찻집은 나중에 찾아봐도 꽤나 비싼 편에 속하는 찻집이었다. 몇 번이고 따뜻하게 차를 우려 내려주어서 만약 네다섯 명이서 한 티팟을 셰어했다면 훨씬 경제적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우리가 있었던 시간 동안 아무 손님도 없어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고 분위기가 정말 고즈넉했다. 직원들은 영어는 전혀 못했지만, 쑥스러움을 겸비한 친절함이 말투와 표정에서 한껏 묻어났다. 50위엔 정도를 주고 추가로 시켰던 견과류는 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차와 잘 어울렸다. 결론적으로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