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찬텡 (cha chaan teng)
내게 하루 세끼 중 가장 필요해서 챙겨 먹는 끼니는 아침인 것 같다.
물론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면서 빵을 먹을 때도 있긴 하지만, 아침에 자리를 피고 앉아 커피와 함께 무언가를 씹는 행위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이 완벽히 깬 느낌이 들고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난다.
주말과 휴가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여유로운 아침을,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에서는 모닝커피를 얼음이 가득한 밀크티를 쭉 들이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달달하고도 밀도가 있는 밀크티를 마시면 그 자체로 배도 든든하고 카페인의 각성 효과도 커피만큼 느껴진다.
반면 아침을 건너뛰는 사람도 참 많은데 그들의 이유도 이해는 간다. 너무 아침이라 입맛이 없거나,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서일 것이다. G도 그중 한 명인데, 그래도 나와 함께 여행을 가면 (늦잠을 자지 않는 한) 그 날 일정의 시작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차찬텡은 홍콩, 마카오 그리고 홍콩과 인접한 중국의 광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이다. 차찬텡에서는 로컬 음식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홍콩식 서양 음식을 판다. 옛날에는 서양 음식이 부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이었는데, 서민들을 위해 낮은 가격에 싼 서양식 혹은 퓨전 음식을 팔면서 차찬텡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로 이번 여행에서 들어간 식당마다 대부분 서양식의 빵 메뉴와 홍콩식의 음식을 같이 판매하고 있어서 차찬텡을 즐길 수 있었다.
비주얼이 충격적인 메뉴다. 마카로니를 보통 샐러드로 먹거나, 맥 치즈로 먹거나, 파스타류로 만드는 것은 보았어도 국물에 (그것도 맑은 국물에) 떠먹는 마카로니라니.
서양의 문화를 홍콩식으로 받은 대표적인 동서양 퓨전 푸드로 볼 수도 있겠다. 맛은 예상외로 무난했다.
치킨스톡이든 뭐든 간에 짭조름한 맛으로 간이 된 국물에 떡국의 떡처럼 마카로니를 떠먹는 느낌?
곁에 나온 버터 바른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는 세트메뉴였다. 반숙된 후라이에 버터를 잔뜩 발라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평범하지만 맛이 없을 수 없는 맛이다.
내가 마카로니 수프를 먹는 동안 G는 이 라면을 먹었다.
라면 면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인스턴트 라면에 들어가는 면이다. 소고기는 아마도 Satay소스로 간을 잘해서 들어갔다. 아침부터 국물이 가득한 면을 먹는다는 게 참 동양적이면서도 그 토핑으로 소시지를 얹은 게 인상적이다.
여행지에서 아침 시간에 식사를 하러 가면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로컬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광지의 시간은 대게 10시 이후에서야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날도 식당에 혼자와 아침 식사를 즐기는 현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현지 사람들이 이 라면 메뉴를 먹고 있었다.
라면을 좋아하는 아빠를 둔 덕에 어렸을 때도 가끔 주말 아침밥으로 라면을 먹곤 했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가끔 아침에 라면을 먹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침부터 라면이냐며 어제 술 먹어서 해장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과 함께 후루룩 들이키는 라면이 꽤 괜찮은 아침 옵션이라는 걸, 홍콩 사람들이 증명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차찬텡 집은 아니었지만, 홍콩 사람들의 Comfort Food로 불리는 죽도 홍콩식 아침식사에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우리나라에서는 닭죽이나 전복죽을 제외하고는 죽이 아픈 사람들의 메뉴였다가 언제부턴가 본죽이나 죽이야기와 같은 프랜차이즈들이 생기면서야 평상시의 메뉴로 자리 잡고 있는 정도인 것 같다. 홍콩에서는 골목골목 어렵지 않게 죽 전문집을 찾아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KFC와 같은 외국 프랜차이즈점에서도 죽을 판매하고 있다.
메뉴에는 소고기나 삶은 내장들이 토핑 되어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G는 부드러운 완자가 가득한 Meatball Congee를, 나는 Fresh Sliced Fish Congee를 시켰다. 그런데 내가 받은 메뉴는 생선 비슷한 것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거의 찢다시피 한 고기가 가득 들어있는 죽이었는데, 잘못 나온 게 분명했지만 맛은 맛있는 닭죽 맛과 비슷해서 그냥 먹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가게라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각 테이블에는 요우티아오를 한 개씩 시켜 죽과 함께 먹고 있었고 우리도 그렇게 했다. 튀긴지 오래되어 그 자체로는 맛 없지만 뜨끈한 죽에 찍어 먹으면 그런대로 자꾸 손이 간다. 생강과 파를 넣은 간장 소스는 죽에 올려져 있는 고기 토핑들을 찍어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녹진한 밀크티와 함께 먹어서인지 Small 사이즈를 시켰는데도 너무 배불러 반 정도를 남기고야 말았다.
차찬텡에서 파는 샌드위치는 부담 없이 맛있어 자꾸만 생각나는 맛이다.
부들부들한 하얀 식빵에 짭조름한 버터를 바르고 포슬포슬하게 조리한 계란과 햄/소시지를 얹는다.
정말이지 심플한 레시피이지만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저 먹은 샌드위치는 마카오에서다. 너무 덥고 지쳐서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아 따라 시켰다가 너무 맛있어서 홀딱 반해 내내 칭찬을 하면서 먹었다.
우리가 이걸 먹는 동안 밖에서는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이 거세게 몰아치다가 다 먹었을 때쯤엔 비가 그쳤다. 그로써 이 식당의 경험이 더욱 완벽해졌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것 같았던 푸딩도 완벽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즐겨보던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에 나왔던 집(프랜차이즈)이라고 한다. 백종원이 나와서 차가운, 따뜻한 푸딩을 종류별로 시키고 감탄했던 그 장면이 기억났다. 이 집에서도 역시 홍콩식 누들도 팔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이 하도 맛있게 먹어서 다음날 다시 와서 먹어보자고 했었지만 일정 상 가지 못했다.
심천에서도 차찬텡에 갔었다. 서양식과 홍콩식 둘다를 경험하고 싶다 보니 메뉴를 욕심내어 주문했다.
이 때도 G는 사테 소고기 라면(Satay Beef Noodles)을 시켰었다.
바삭하게 구워 연유를 발라내어 준 번도 달달하고 맛있었다. 메뉴를 시킨 후 우린 한참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공부했다.
그러면서 중국어로 샌드위치를 어떻게 표기/발음하는지를 찾아냈다. 바로 산원쯔(三文治)였다. 영어 발음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광둥어와 보통화는 전혀 다르다고 하는데, 이렇게 간단한 표기에서도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보통화로는 산밍쯔(三明治)라고 한단다. 심천은 중국 본토기는 하지만 광둥어권이라 산원쯔라 표기하는 것 같다.
홍콩/마카오 여행을 하면서 유난히 부모님을 모시고 한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나마 가깝기도 하고, 어떻게 모시고 다니면 좋을지 여러 번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돌아와 곧 가을이 지나기 전에 가족과 함께 다시 갈 계획을 세웠고, 비행기표도 끊었다. 달달한 아시안식 빵과 라면을 좋아하는 우리 아빠에게 홍콩의 차찬텡 문화를 소개해주고 싶다.